일제강점기 대만 사회를 그린 대만 소설 <아시아의 고아>가 번역 출간되었다. 사진은 대만 원주민 항일 봉기 지도자 동상 앞에 묵념하는 일본 시민들. <한겨레> 자료사진
우줘류 소설 ‘아시아의 고아’
일본 지배하의 대만 배경삼아
‘유학파 엘리트’ 불안한 삶 다뤄
식민지 조선과 유사한 풍경 그득
작가, 애초 일본어로 작품 탈고
일본 지배하의 대만 배경삼아
‘유학파 엘리트’ 불안한 삶 다뤄
식민지 조선과 유사한 풍경 그득
작가, 애초 일본어로 작품 탈고
“하기야 개명하게 되면 처음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하지만 솔직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다 과도기적인 현상 아니겠어요?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그래도 훗날 자손을 생각하면 그 정도 과도기적 고통쯤이야 견뎌 내야 비로소 당당한 일본인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어쩐지 익숙하게 들리는 이 대사는 대만(타이완) 작가 우줘류(1900~1976)의 소설 <아시아의 고아>(송승석 옮김, 아시아 펴냄)에 나오는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어느 대만 사나이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창씨개명과 국어가정화(=집 안에서 일본말 쓰기), 타이완어 말살 주장 등 일제 치하 한반도에서 흔히 보았던 풍경들이 이 소설에는 그득하다.
<아시아의 고아>는 우줘류가 1943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해방되던 해에 탈고한 일본어 소설이다. 대만 작가가 일어로 쓴 소설이라는 점에서 국문학계의 최근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인 ‘이중어글쓰기’에 견주어 살펴 볼 여지도 있다. 최근 번역돼 나온 한국어판은 1962년 푸언룽이 옮긴 중국어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소설은 1946년 주인공의 이름을 딴 제목 ‘후즈밍’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그러나 ‘후즈밍’(胡志明)이 베트남 공산당 지도자의 이름을 떠오르게 한다는 문제 때문에 작가는 1952년 일본에서 출간한 두 번째 판본부터 주인공 이름을 ‘후타이밍’(胡太明)으로 손보고, 제목도 ‘아시아의 고아’로 바꾸었다. 이 말은 오늘날 흔히 대만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쓰이는데, 네덜란드 식민지였다가 청나라의 지배를 거쳐 5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해방 뒤에는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의 장기 독재를 경험한 대만의 굴곡진 현대사를 적절히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후타이밍은 어린 시절 서원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근대적 교육 체계로 옮겨 타서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지식인이다. 그러나 힘 없는 피식민지 백성인 그에게 지식은 오히려 우환의 근원일 따름이다. 진지하고 성실한 성품을 지닌 그는 대만과 일본, 중국 대륙을 오가며 험난한 세파를 헤쳐 갈 길을 모색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길을 찾지 못한다.
“역사의 힘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고 있습니다. 군이 혼자 초연하게 관망하고 있는 것도 외로울 것입니다. 동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은 역사가 회전하는 어느 쪽 방향으로도 가세할 수 없으니까요. 설령 군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느 쪽으로든 움직인다 해도 남들은 신임하지 않을 거예요. 기껏해야 간첩 취급이나 하겠죠. 생각해 보면, 군은 기형아인 셈이죠.”
그가 상하이에서 만난 어느 중국인은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가리켜 이렇게 일갈한다. 적극적인 항일 운동에 나서지도 못하고 노골적인 친일 분자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어디까지나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타이밍의 ‘선의’를 당대의 역사는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살았지만 외려 그 모두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그야말로 버러지처럼 무력하고 무용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타이밍이 이런 반성 끝에 광기에 사로잡힌 채 종적을 감추고 만다는 소설 결말은 역사와 민족이라는 부모를 잃어버린 가엾은 고아의 비참한 말로를 상징하는 셈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우줘류 소설 ‘아시아의 고아’
대만(타이완) 작가 우줘류(1900~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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