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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열두살 소년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등록 2012-10-12 19:58

삐삐야 미안해
이주영 글, 류충렬 그림/고인돌·1만2000원
동화 <삐삐야 미안해>는 초등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어린이문화운동을 해온 이주영 선생이 추억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놀 거리라고는 개구리나 곤충을 잡으며 들판에서 뛰어노는 게 전부였던 60년대 옛날이야기다. 풍족하고 놀 거리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낯선 회고담일 듯싶지만 그렇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장난감보다 좋아하는 동물 키우기의 사연을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두 작품 중 표제작은 궁노루 4마리에 관한 기억이다. 시골의 여름날 친구 기남이 아버지가 어미 잃은 새끼 궁노루 4마리를 학교에 가져온다. 교장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 관사에 살던 주영이는 아기 궁노루들의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고 삐삐, 삐루, 삐아, 삐애라는 이름까지 정성스레 지어줬다. 하지만 막내 삐애는 다음날 죽고 동물 키우기에 익숙지 않았던 주영의 실수로 삐루도 얼마 안 가서 세상을 떠난다.

다행히도 삐삐와 삐아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린 주영이도 다시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궁리 끝에 친구들과 당번을 정해 노루들을 돌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돌아와보니 아이들이 우유를 너무 많이 줘서 탈이 난 삐아가 죽고 말았다. “우리가 개울로 놀러 가지만 않았어도, 놀러 가서 고기잡이를 하지 말고 미역만 감고 왔어도, 우유 끓이고 전지분유 담은 통을 부엌에 두지만 않았어도”라는 죄책감과 후회로 눈물이 쏟아졌다. 홀로 남게 된 삐삐를 정성껏 돌보지만 온기 남은 아궁이 속에서 잠을 자던 삐삐마저 어느날 아궁이 안쪽 구들로 들어가버린다.

삐삐가 구들 안에 갇히게 되자 아버지는 놀랍게도 방구들을 뜯어내자고 한다. 처음에는 노루 한마리 제대로 못 키운다고 아들을 야단치기만 하던 아버지마저 꺼져가는 여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집안 전체를 뒤흔들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생명이란 이런 거다. 정붙이기 전에는 한갓 산짐승에 불과했지만 곁으로 와 눈빛을 나누면서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서는 진짜 가족이 된 것이다.

‘파랑새와 새매’도 어린 시절 식구처럼 어루만지며 키우던 두 마리의 새를 가슴 아프게 떠나 보내는 이야기다. 작가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이야기’라는 이 두 개의 동화를 쓰면서도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열두살의 소년이 귀한 생명을 떠나보내면서 겪은 아픔을 바라보는 어른 독자의 가슴도 저릿하다.

늘어나는 애완동물 수만큼이나 쉽게 버려지는 유기동물도 많은 요즘이다. 받고 싶은 선물로 강아지나 고양이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당장 기쁜 선물을 해주기 전에 이 책을 읽히면 장난감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알려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섬세하고 따스한 삽화도 읽는 이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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