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인성(59)
‘한낮의 유령’ 소설가 이인성
‘돌부림’ 이후 6년만에 중편 발표
소설 붙들고 고뇌하다 혼돈 빠진
주인공 통해 글쓰기 괴로움 짚어
“문학만 붙들고 사는게 좋았는데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강박 생겼다” 작가 이인성(59)씨가 6년 만에 신작 중편 <한낮의 유령>을 발표했다.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발표한 이 소설은 소설이 써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작가를 내세워 글쓰기의 의미와 한계, 실재와 환상의 경계 등을 짚어 본 전형적인 ‘이인성표 소설’이다. 2006년 2월 소설에 전념하고자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같은 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중편 <돌부림>을 발표한 뒤 그동안 새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었을 땐 물론 소설에 더 집중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해서 문학만 붙들고 사는 게 한편으로는 아주 좋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다른 핑계거리가 없으니 더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강박 같은 게 생기더군요. 그러다 보니 중편 하나 쓰는 데 6년이나 걸린 셈이 됐습니다.” 잘 써지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고뇌하는 <한낮의 유령>의 주인공은 그런 점에서 작가 자신을 닮았다. “언제부턴가,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 낮에는 까만 그림자로, 밤에는 하얀 그림자로, 언제나 거울처럼 나를 붙안고 살아왔던, 오, 나의 그림자, 나의 소설아, 너는 홀연 어디로 사라졌던가? 너는 정녕, 그렇게 나를 떠나버린 것인가? 이젠 영영, 내게 돌아오지 않을 셈인가? 도대체 왜?” 신파조의 유머가 느껴지는 소설 도입부는 그가 1995년에 내놓은 장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첫 문장 “시가 써지지 않는다”를 연상시킨다. “소설 없이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외곬의 절망에 휩싸인 채, 눈을 질끈 감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막다른 심정으로, 나는 돌연, 모든 밥벌이 일거리들을 내던졌고 모든 일상적 연락을 끊었고 거처마저 옮겨버렸던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는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내던졌던 작가 자신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낮의 유령>은 그동안 발표했던 <분명히 나쁜 꿈> <악몽여관 407호> <돌부림>과 연작 관계에 있는 작품입니다. 발표 순서는 이 작품이 가장 나중이지만, 연작으로서는 가장 앞부분에 배치되어야 할 작품이죠. 이 네 중편 사이의 틈을 메꾸는 짧은 이야기를 몇 편 더 써서 내년 여름쯤에는 책으로 묶어 낼 생각입니다.” 내년에 연작소설집이 나온다면 그의 소설책으로는 <강 어귀에 섬 하나>(1999) 이후 무려 14년 만의 일이 된다. 그는 2000년에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을 낸 바 있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과 <강 어귀에 섬 하나>는 90년대 이후 범람하는 욕망을 정면으로 다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책들이에요. 욕망의 끝자리에는 뭐가 있는가, 거기서 터져 나오는 게 악몽이 아닐까 싶은데, 새로 묶어 낼 책의 주제가 바로 악몽입니다.” <한낮의 유령>의 주인공은 소설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한편 작업실이 있는 동네를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곤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훨씬 더 유령 같은 웬 사내”를 목격한다. “무위도식형의 기인 행색”인 그 정체불명의 사내는 알고 보니 “한때… 소설 쓰던” 인물이었고,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는 주인공이 그 사내를 정말로 목격했던 것인지조차 불확실해지면서 혼돈과 악몽이 그를 삼켜 버린다. 한편 이인성씨의 6년 만의 신작 발표에 맞추기라도 하듯,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씨가 <전위의 기원과 행로-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문학과지성사)라는 연구서를 내놓았다. 평론가 김현과 소설가 이청준이 이인성 소설에 끼친 영향을 계보학적으로 정리한 독특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이인성씨는 “까마득한 후배가 대학 시절에 쓴 습작품까지 뒤져서 논의를 전개하는 실증 정신이 놀라웠다”면서 “작가로서 내 자신을 이해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설 붙들고 고뇌하다 혼돈 빠진
주인공 통해 글쓰기 괴로움 짚어
“문학만 붙들고 사는게 좋았는데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강박 생겼다” 작가 이인성(59)씨가 6년 만에 신작 중편 <한낮의 유령>을 발표했다.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발표한 이 소설은 소설이 써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작가를 내세워 글쓰기의 의미와 한계, 실재와 환상의 경계 등을 짚어 본 전형적인 ‘이인성표 소설’이다. 2006년 2월 소설에 전념하고자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같은 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중편 <돌부림>을 발표한 뒤 그동안 새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었을 땐 물론 소설에 더 집중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해서 문학만 붙들고 사는 게 한편으로는 아주 좋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다른 핑계거리가 없으니 더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강박 같은 게 생기더군요. 그러다 보니 중편 하나 쓰는 데 6년이나 걸린 셈이 됐습니다.” 잘 써지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고뇌하는 <한낮의 유령>의 주인공은 그런 점에서 작가 자신을 닮았다. “언제부턴가,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 낮에는 까만 그림자로, 밤에는 하얀 그림자로, 언제나 거울처럼 나를 붙안고 살아왔던, 오, 나의 그림자, 나의 소설아, 너는 홀연 어디로 사라졌던가? 너는 정녕, 그렇게 나를 떠나버린 것인가? 이젠 영영, 내게 돌아오지 않을 셈인가? 도대체 왜?” 신파조의 유머가 느껴지는 소설 도입부는 그가 1995년에 내놓은 장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첫 문장 “시가 써지지 않는다”를 연상시킨다. “소설 없이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외곬의 절망에 휩싸인 채, 눈을 질끈 감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막다른 심정으로, 나는 돌연, 모든 밥벌이 일거리들을 내던졌고 모든 일상적 연락을 끊었고 거처마저 옮겨버렸던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는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내던졌던 작가 자신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낮의 유령>은 그동안 발표했던 <분명히 나쁜 꿈> <악몽여관 407호> <돌부림>과 연작 관계에 있는 작품입니다. 발표 순서는 이 작품이 가장 나중이지만, 연작으로서는 가장 앞부분에 배치되어야 할 작품이죠. 이 네 중편 사이의 틈을 메꾸는 짧은 이야기를 몇 편 더 써서 내년 여름쯤에는 책으로 묶어 낼 생각입니다.” 내년에 연작소설집이 나온다면 그의 소설책으로는 <강 어귀에 섬 하나>(1999) 이후 무려 14년 만의 일이 된다. 그는 2000년에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을 낸 바 있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과 <강 어귀에 섬 하나>는 90년대 이후 범람하는 욕망을 정면으로 다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책들이에요. 욕망의 끝자리에는 뭐가 있는가, 거기서 터져 나오는 게 악몽이 아닐까 싶은데, 새로 묶어 낼 책의 주제가 바로 악몽입니다.” <한낮의 유령>의 주인공은 소설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한편 작업실이 있는 동네를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곤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훨씬 더 유령 같은 웬 사내”를 목격한다. “무위도식형의 기인 행색”인 그 정체불명의 사내는 알고 보니 “한때… 소설 쓰던” 인물이었고,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는 주인공이 그 사내를 정말로 목격했던 것인지조차 불확실해지면서 혼돈과 악몽이 그를 삼켜 버린다. 한편 이인성씨의 6년 만의 신작 발표에 맞추기라도 하듯,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씨가 <전위의 기원과 행로-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문학과지성사)라는 연구서를 내놓았다. 평론가 김현과 소설가 이청준이 이인성 소설에 끼친 영향을 계보학적으로 정리한 독특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이인성씨는 “까마득한 후배가 대학 시절에 쓴 습작품까지 뒤져서 논의를 전개하는 실증 정신이 놀라웠다”면서 “작가로서 내 자신을 이해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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