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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발전소에 빼앗긴 바닷가…아련한 내 고향이여

등록 2012-12-14 19:42

<순비기꽃 언덕에서>
서순희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순비기꽃 언덕에서> 서순희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순비기꽃 언덕에서>
서순희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순비기나무는 햇볕이 강한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다. 다 자라도 키가 30~70㎝를 넘지 않을 정도로 낮게 자란다. 모진 바닷바람 속에서 연보랏빛 작고 순한 순비기꽃을 피운다.

<순비기꽃 언덕에서>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바닷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삼아 그 속에서 소박한 삶을 피우는 순비기꽃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요즘 쏟아져나오는 청소년 소설들과 다르게 ‘읽혀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작가가 오롯이 자신의 생각의 결을 따라가며 자전적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때와 장소는 1970년대, 동틀포구를 껴안은 충남 보령의 아름답고 작은 바닷가 마을인 수청구지다. 이곳에는 어려서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게 된 봉희가 할머니와 부모, 고모, 삼촌 등과 함께 산다. 장애 때문에 알게 모르게 자신을 탓하는 가족도 있지만, 봉희는 할머니와 엄마, 특히 자신과 친한 삼촌의 도움으로 성장해간다. 바다와 갯벌을 오가며 일을 하고 그 속에서 사랑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어느날 수청구지에 바닷가를 막고 화력발전소를 세운다는 계획이 발표된다. 계획에 찬성하여 한몫 잡으려는 사람이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체념하고 다른 삶의 방도를 찾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아름답던 바닷가는 곧 사라지리라는 사실과, 수청구지 사람들의 삶도 예전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봉희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처럼 장애가 있던 이웃집 경자가 세상을 떠나고, 문둥병을 앓았던 작은할머니는 소록도로 떠난다. 그동안 자신을 꺼리던 아빠로부터 남다른 바느질 실력을 칭찬받는 등 아빠와 새로운 관계를 트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자신을 지극히 아껴주던 삼촌을 떠나보내게 된다. 그리고 봉희 자신도 열여섯 살의 나이로 이제껏 자신을 키우고 길러왔던 수청구지를 떠난다. 화력발전소 터를 닦느라 무너져내린 바위산과 메워져가는 바닷가를 뒤로한 채로.

작가는 “이웃과 가족들의 끈끈한 사랑으로 지내던 어렸을 적 시골의 정취를 그리워하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가 스승으로 삼은 고 이문구 작가의 작품처럼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는 소박한 농촌의 모습이 문학의 ‘원형’으로부터 비롯하는 감동을 전해준다. 아버지의 김 농사, 할머니의 갯벌일처럼 바닷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 먹고 마시는 것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 구수한 사투리가 담뿍한 사람들의 말씨 등 아련하고 소중한 ‘고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여기에 낮고 소박한 것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순비기꽃에 담은 작가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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