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의식하며 ‘경쟁과 배제’의 길을 걸어온 60년 동안, 남과 북은 다르면서도 닮은 사회를 각각 만들었다. 국가주도의 문화예술진흥 정책을 상징하는 평양의 인민문화대궁전(왼쪽)과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아래쪽)은 이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승렬 교수 등 ‘분단의 두 얼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학계는 물론 전 사회적으로 그 명망을 인정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냉전이 모든 논리를 압도하던 시기, ‘분단시대의 역사’ 또는 ‘분단체제’ 등의 개념을 선구자적으로 제시해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전체를 인식지평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는 남북의 권위주의 체제를 함께 지양할 이론적·실천적 토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분단의 두 얼굴>(역사비평사)을 쓴 김승렬 경상대 교수를 비롯한 19명의 연구자들은 이 두 노학자에게 크게 기대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다만 이들의 연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시도하고 있다. 남과 북을 하나의 분석대상으로 삼은 뒤, 이를 다시 동·서독의 분단체제와 비교연구한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정치·경제 영역에 집중했던 분단체제 연구의 관심을 사회제도 및 문화영역에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분석대상 정치적 영역 넘어
사회·여성·문화로까지 확대
‘경쟁과 배제’ 60년 역사
관계사적 시각으로 비교분석 ‘연구’라는 말에 주눅들 필요는 없는데, 지은이들 스스로 “전문 연구자와 일반 독자를 함께 고려한 ‘학술대중서’”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남북의 건축물을 비교하거나 남북의 역사교육 체제를 분석하는 논문은 대단히 흥미로운 동시에 실용적이다. 서로를 빼닮은 권위주의 체제(유신체제와 수령체제) 아래 경쟁적인 산업화·근대화를 추진했음을 밝히는 논문은 비록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일반 독자들에겐 여전히 풍부한 영감을 준다. 서로를 이기기 위해 다른 길을 걸어 왔으나, 어느새 ‘위기’라는 길목에서 마주친 남북의 사회경제 체제는 ‘경쟁과 배제의 역설’을 가장 생생하게 웅변한다.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남과 북이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력을 ‘동원’하면서도 가부장제와 가사노동의 굴레를 ‘방치’해 ‘사회노동과 가정노동의 이중적 책임’을 덧씌웠음을 지적하는 논문도 특별하다. 90년대 이후 서로 다른 이유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남·북이 거의 동시적으로 여성의 사회노동을 주변으로 몰아냈다고 분석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의 묘미는 이런 남북의 ‘대칭적 관계’가 동·서독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있다. 적어도 각각의 독자정부를 수립하는 1948년 이전까지 남쪽의 과도입법의원과 북쪽의 북조선노동당은 보다 폭넓고 철저한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경쟁’했다. 동·서독 역시 나치 청산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를 견제하고 때로는 모방하면서 경쟁했다. 동독과 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여성의 권익 신장을 이끌었고, 서독과 남한은 시민사회의 여성운동을 통해 이를 이뤄냈다는 점도 서로 닮았다. 비록 남북(분단체제)과 동서(분단체제)에 대한 비교가 ‘화학적’이기보다 ‘기계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의미심장하다. 냉전의 붕괴와 함께 통일을 이룬 독일의 분단체제와 달리, 남북은 냉전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독일과 한반도를 다양한 국면에서 교차연구하는 것은 분단체제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두 분단체제의 ‘차별성’을 드러내 이를 해소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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