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저울
이춘재·김남일 지음
한겨레출판·1만4000원
이춘재·김남일 지음
한겨레출판·1만4000원
지난 일에 ‘만약 ~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들이대는 것은 부질없다고 한다. 하지만 순간의 선택이나 일부 변수에 의해 운명이 갈린 큰 사건들은 그런 상념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통틀어 사법부에서 일어난 일들 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건이야말로 가정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서 6 대 5의 의견으로 무죄를 확정했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경영권과 부를 물려주려고 계열사들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끼친 이 회장이 투옥되는 일대 사변은 한 끗 차이로 일어나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법률 지식과 권위를 지닌 이들이 포진한 대법원에 어떤 사정이 있길래 일반적 법 상식에 어긋나는 결과가 나왔을까? 왜 하필 6 대 5였을까? 만약 개혁 성향 대법관들을 지칭하는 ‘독수리 5형제’ 중 김지형 대법관이 대오를 이탈하지 않았다면? ‘스윙 보터’인 김능환 대법관까지 유죄 쪽에 선 상태에서 김지형 대법관의 무죄 판단은 이 회장의 사지 탈출에 결정적이었다. 또 하나의 가정은 ‘사법사적 문제 인물’인 신영철 대법관에 관한 것이다. 만약 신 대법관이 재판 개입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거나, 그 자리에 재벌 범죄에 무르지 않은 대법관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에서 법조를 취재해온 기자들이 쓴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기의 대법원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뒤로 안팎에서 반성과 개혁의 요구가 분출했고, ‘독수리 5형제’가 대법원에 입성하는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 청산 등에도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사법부의 르네상스기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삼성 사건이 상징하듯 개혁 세력은 중과부적이었고, 이명박 정부는 대법관 인사를 통해 다시 ‘보수 본류’가 확실히 압도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부제처럼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사법부를 주제로 한 어떤 책보다 한국 최고 재판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법부 ‘개혁과 좌절’의 과정을 둘러싸고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갈등과 물밑 다툼, 정치적 수 싸움까지 밀착 취재한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령 진보적이고 비주류적인 인사들을 발탁하며 개혁 사령탑 구실을 하던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왜 나중에는 신영철 대법관을 기용하며 조광조를 버린 중종처럼 됐는지가 잘 묘사돼 있다. 내밀한 이야기들로 서술한 사법부의 격동기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드라마 같았던 에버랜드 사건의 막전막후도 세밀하게 그렸다. 개혁과 반개혁 진영에 선 사람들, 그 속에서 고뇌하고 갈팡질팡한 인사들의 얘기는 인물 열전과도 같다.
그리고 사법의 ‘기울어진 저울’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이 남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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