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아래로 현대문학 700호, 600호, 500호, 400호 표지사진, 오른쪽 위부터 300호, 200호, 100호, 창간호 표지사진.
사진 현대문학 제공
1930년대생 고은·정현종부터
1987년생 김승일까지 시인 23명
소설가 7명과 축하글 실어
1987년생 김승일까지 시인 23명
소설가 7명과 축하글 실어
시인 23명이 7행짜리 시 한 편씩을 썼다. 4월호로 지령 700호를 맞은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고은, 정현종 같은 1930년대생 원로에서부터 1987년생인 김승일까지 노소가 함께했다. 일곱 행이 모여 한 연을 이루는 형식에서부터 한 행씩이 한 연에 해당하는 일곱 연짜리까지 형식은 다채로웠지만, 어찌 되었든 모두가 일곱 행. 약속과 축하의 의미가 그 일곱 행에 담겼다.
“저 1958년 늦가을 효제동 현대문학사에는/ 서무 김수명/ 교정 박재삼/ 편집 오영수 만돌린/ 그리고 주간 조연현이 단출히 앉아 있었네/ 1년 전 김구용이 잠깐 있다가 나갔네/ 어느 날 키다리 화가 김환기가 상갓집 다녀와 바둑판을 쓸어버렸네”(고은 <웃음판> 전문)
고은 시인의 시는 자신이 등단한 1958년 <현대문학> 사무실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되살림으로써 지령 700호를 축하했다. 고은 시인과 나이 차가 무려 54살에 이르며 역시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김승일의 시 <현대의 문학>은 전통의 계승과 극복이라는 문학의 숙명을 젊은이다운 활달한 어조에 담았다.
“감쪽같이 속았군요. 여자보다 여자 같아요. 내가 여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속이고 다닐 때 거울 속의 나는 아무도 속이지 않고/ 여자가 되어 살아가는 중인가./ 어느 날엔 가발을 벗어 화장실에 수건처럼 걸어놓았다./ 화장실에 들어가던 내 아버지는 귀신을 보았다고 생각하였고./ 바닥에 미끄러져 죽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버지뻘의 나이인 것이다.”(김승일 <현대의 문학> 전문)
정현종의 <이른봄볕>은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이 무렵의 분위기에 맞춤하다.
“이른봄볕 속에/ 자글자글 붐비는 이것은,/ 오는 기운이기도 하고/ 가는 기운이기도 한 이것은,/ 내 몸을 전면적으로 지나/ 모든 움트려는 것들의 속내를/ 그렇지 않아도 환하게 노래하네, 새소리의 속내와…”(정현종 <이른봄볕> 전문)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사는 시인 박남준은 다섯 갈래 노란 꽃잎이 바람개비를 닮은 물레나물꽃을 사랑하는 이의 심사에 빗대어 노래했다.
“꽃바퀴 돌리고 있다/ 햇살을 담아 꽃잎물레에 돌리는/ 저 바람개비 바람 하나 가졌나/ 그 곁을 떠난 사랑/ 돌아오는 길 허방을 짚을까봐/ 산비탈 한쪽 켜든 꽃다발 전등/ 샛노랗게 불 밝히고”(박남준 <물레나물꽃등> 전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시영 시인은 서울지하철 2호선에 비친 고단하면서도 뜨거운 삶의 현장에 눈길을 준다.
“가난한 사람들이 머리에 가득 쌓인 눈발을 털며 오르는/ 지하철 2호선은 젖은 어깨들로 늘 붐비다/(…)/ 가난한 사람들이 식식거리며 콧김을 뿜으며 내리는/ 지하철 2호선은 더운 발자국들로 늘 붐비다”(이시영 <2호선> 부분)
이 특집에는 이밖에도 서정춘, 김기택, 황인숙, 안도현, 장석남 시인 등이 참여했다. <현대문학> 기획자문위원인 최승호 시인은 “시가 갈수록 길어져 가는 세태에 일곱 행짜리 짧은 시로 <현대문학> 지령 700호를 축하해 보자는 취지에서 특집을 기획했다”며 “시란 원래 생략과 응축의 문법이며 말보다 여백이 큰 몫을 하는 장르인데, 특집에 참여한 스물세명 시인들의 작품에서 그런 시의 본질을 새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문학> 4월호는 23명의 7행시와 함께 일곱 작가(최일남 이동하 함정임 박성원 박형서 이강숙 이장욱)의 단편 일곱 편을 실음으로써 역시 지령 700호를 자축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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