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남긴 그늘과 심리적 변화
비자나무숲
권여선 지음
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권여선의 네 번째 소설집 <비자나무 숲>에는 단편 일곱이 묶였다. 표제작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은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젊은 남자 정우의 주변 사람 셋을 등장시킨다. 정우의 연인이었던 명이와 정우의 남동생 도우, 어머니가 그 셋. 정우가 죽은 지 2년반 뒤 문득 도우가 명이에게 전화를 걸어 온다. 어머니가 명이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 망설임 끝에 정우네 식구들이 사는 제주에 내려간 명이가 도우 및 어머니와 제주의 명소 비자림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정우의 죽음이 남긴 그늘 때문에 불편하고 어두웠던 세 사람의 분위기가 사소한 농담을 계기로 밝고 유쾌한 쪽으로 옮겨 가는 심리적 변화를 쫓는 데에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자비출판과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를 무대로 한 <팔도기획>은 ‘윤 작가’라는 인물의 개성에 크게 의존한 작품이다. 자서전 대필을 위해 의뢰인을 인터뷰하러 가라는 지시에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라며 버티는 그는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을 닮았다. 자신은 작가이므로 글 쓰는 일만을 하겠노라는 그의 고집은 결국 사무실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그는 회사를 떠나게 되는데, 그를 관찰하는 구실을 하던 화자 ‘김 작가’의 “내부에서도 뭔가를 또박또박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서울의 센트럴파크’ 용산공원의 미래
용산공원
조경비평 봄 지음
나무도시·1만8000원
곧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용산미군기지는 상처의 땅이자 기회의 공간이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군용지로 수용된 이래 지난 100년 동안 이곳은 외세, 전쟁 같은 폭력적 단어를 빼놓고선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 이처럼 넓게 비어 있는 땅이 없기에, 미군들이 이사간 자리에 ‘서울의 센트럴파크’를 만들자는 기획은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다.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전에서 네덜란드 조경가인 아드리안 구즈와 한국 건축가 승효상이 이끈 <치유: 미래의 공원>이 당선되면서 용산공원은 실체적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당선작을 비롯해 당시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에 대한 20명의 조경·생태 전문가들의 비평을 담았다. 아직 공간화되지 않은, 또는 앞으로도 구현될 기회를 잃은 ‘2차원 평면’을 꼼꼼이 들여다보며 사회·역사·문화적 맥락, 공원의 근본적 의미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한국적 경관을 표현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삼은 당선작은 ‘국가적 상징성과 지역적 정체성의 경관적 재현’이라는 설계 지침에 가장 명확하게 답한 작품이다. 하지만 새로운 물리적 지형을 조성하는 작업은 과연 생태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전면 공원화는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가 지닌 맥락을 충분히 반영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햇살 찬란한 어느 봄날, 용산공원을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교과서 논쟁’에 감춰진 뉴라이트의 욕망
나는 대한민국 역사교사다: 뉴라이트에 가하는 따끔한 일침
노기원 지음 서해문집·11900원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뉴라이트 단체가 벌인 ‘역사전쟁’을 기억하는가? 이들은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파’ 교과서로 지목하고 퇴출을 요구했다. 나아가 이 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잡겠다며 ‘대안 ’ 교과서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 교과서엔 무엇이 담겼던가? 먼저 식민지 근대화론이 되살아났다. 식민지 시기는 시장경제와 공업화라는 문명질서가 도입되는 시기로 재구성됐다. 친일파도 재평가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킨 대한민국의 국부로 추앙됐다. ‘사사오입 3선 개헌’, ‘3·15 부정선거’ 같은 독재의 기억은 소거됐다.
현직 고교 교사인 저자는 이를 과거에 대한 기억을 지배하려는 ‘신종 우파’ 역사가 집단의 사회적 투쟁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기존 역사가들이 무수한 사료를 찾고 분석한 끝에 구성한 ‘다른’ 시각의 역사를 ‘틀린’, ‘잘못된’ 집단기억이라고 공격한다. 대신 자유시장경제라는 현실의 기준에 맞춰 입맛대로 역사적 기억을 재구성하려 한 것이 ‘교과서 파동’의 본질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했다. 저자는 ‘욕망을 지닌 역사가와 사료와의 대화’라고 이를 재해석한다. 책을 따라 가노라면 뉴라이트의 감춰진 욕망과 직면하게 될 터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젊은이들에 필요한 건 위로 아닌 현실 고민
청춘의 커리큘럼
이계삼 지음 한티재·1만5000원
지은이 이계삼씨는 지난해부터 경남 밀양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에서 지역 어르신들의 투쟁을 돕는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 핵 발전으로 만들어낸 전기를 대도시로 끌어오기 위해 세우는 송전탑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이들과 함께 싸워 왔다. 그래서인지 <청춘의 커리큘럼>은 고전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고 소개하는 식의 책이 아니다. 경제학, 농업, 정치학, 민주주의, 석유, 지식인 같은 주제가 현실에 대한 고민과 모두 맞닿아 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기 전 11년간 국어교사였던 지은이는 10대와 20대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보기에 청춘에 대한 기성세대의 충고와 위로는 잘못된 점이 많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은 엘리트들의 공허한 위로이며, “토플 책을 놓고 짱돌을 들라”는 타박은 이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대신, 그는 기술의 타락을 지적한 에른스트 슈마허, “소농이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 주장한 웬델 베리, 경제성장 논리의 허위를 말한 더글러스 스미스 같은 지식인들의 사상을 통해서, 소박하고 지역에 기반한 대안적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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