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료의 풍경
황상익 지음/푸른 역사
4만9000원
황상익 지음/푸른 역사
4만9000원
역사가는 탐정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사료를 실마리 삼아 그 당시에 벌어진 사건을 밝혀내야 하는 일이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 대해, 기대와는 다르게 얼마 남지 않은 사료를 바탕으로 하여 지나치게 치밀하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밝혀내고 있다.
이제는 의학이라고 하면 누구나 서양의학을 떠올리지만 사실 서양의학은 이 땅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지 130년가량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서양의학은 이 땅에 어떻게 자리잡았을까?
안타깝게도 겨우 130여년 된 우리나라의 서양의학 역사는 그동안 그다지 연구가 되지 않은 채 묻혀져 있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의 상당 부분이 가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인 사료를 뒤지고 뒤져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출발을 찾아낸 이 책의 저자인 황상익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교수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됐던 <제중원>이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이 드라마가 많은 부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픽션이지만 역사 고증까지 언급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를 교정하고자 하는 황 교수의 노력은 매우 철저하다.
제중원은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가 치열하게 ‘소유권’ 논쟁을 벌이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두 의대는 서로 제중원의 적통임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하지만 황 교수가 구한말 조선 정부의 공문과 제중원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선교사 겸 의사 호레이스 뉴턴 앨런이 쓴 편지, 당시의 신문 등을 종합해 밝혀낸 바를 보면 제중원은 조선 최초의 왕립 혹은 국립 근대식 의료기관이다.
미국인인 앨런 역시 조선 정부가 고용한 의사이다. 서양의학이 마치 선교사나 서양인 의사에 의해 이식된 것처럼 그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당시 조선 정부가 능동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증거 역시 이 책에 자세히 수록돼 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두창이라는 감염병에 대한 예방접종이라고 할 수 있는 우두술을 들여온 지석영처럼 당시 발전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서양의학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의사나 의대생은 물론, 우리나라의 근대의학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의료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침 과거 제중원 터인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법재판소나 그 주변에는 과거의 역사를 알리는 표석이 많이 있다.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표석만 따라다녀도 구한말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또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종합해 당시를 그대로 재현해 내려는 연구 방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한말 개화파인 홍영식이나 박규수의 집이었다가 제중원이 되고, 훗날 헌법재판소가 되는 변화를 알고 있는 나무인 ‘백송’의 위치로도 역사를 쓸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심리정보국 폐지
■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검찰에 불려 간다면?
■ 낙하 훈련하던 특전부대원 추락사
■ “침략은 역사적 사실” 일본 언론들도 아베 ‘망언’ 비판
■ [논쟁] ‘젠틀맨’ 열풍, 문화 애국주의인가…당신의 생각은?
■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심리정보국 폐지
■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검찰에 불려 간다면?
■ 낙하 훈련하던 특전부대원 추락사
■ “침략은 역사적 사실” 일본 언론들도 아베 ‘망언’ 비판
■ [논쟁] ‘젠틀맨’ 열풍, 문화 애국주의인가…당신의 생각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