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낙원을 아시나요?
한낙원(1924~2007)은 195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수십 편의 에스에프(SF), 그러니까 과학소설을 쓴 작가다. 1960, 70년대에 초·중등학교를 다닌 세대라면 <금성 탐험대>나 <우주 항로> 같은 그의 과학소설을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1959년 <화성에 사는 사람들>과 <잃어버린 소년> 등 ‘과학모험소설’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한낙원은 평생 어린이·청소년용 과학소설을 쓰면서 과학소설 불모지였던 한국에 이 장르를 안착시켰다. 그런 점에서 한낙원은 한국 과학소설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로 꼽을 만한 인물이다.
한낙원은 1990년대 초 이후 신작 집필을 그만두었지만, 그의 작품은 2000년대 초까지도 꾸준히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러나 대상이 주로 어린이 독자였던 탓에 문단은 물론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대표 장편과 중단편을 묶은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김이구 엮음, 현대문학 펴냄)은 잊힌 작가를 되살려낸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한 ‘작고문인선집’의 일환으로 나온 이 책에는 한낙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 <잃어버린 소년> <금성 탐험대> <별들 최후의 날>과 중단편 <길 잃은 애톰> <애톰과 꿀벌> <미애의 로봇 친구> <사라진 행글라이더> <어떤 기적>, 그리고 작품 목록과 연구 목록 등 관련 자료가 묶였다.
“1990년대 복거일, 듀나 등의 작가가 출현해 활동하기까지 한국의 과학소설은 불모지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배명훈과 박성환 등의 과학소설 작가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박민규나 윤이형 같은 본격문학 작가들도 에스에프적 소설을 발표하고 있지만요. 우리 문학사를 돌아볼 때 ‘과학소설가’의 이름에 걸맞은 창작 활동과 저술 활동을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행한 과학소설 작가로는 한낙원이 최초이면서 유일합니다.”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을 엮은 문학평론가 김이구씨는 “이 선집 발간이 한국 과학소설사의 끊어진 맥을 잇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낙원이 주로 활동한 1950~1970년대는 근대화와 경제 개발의 시대였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발전된 미래의 삶을 꿈꾸는 데 과학소설이 펼치는 상상의 세계는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것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선집에 실린 <잃어버린 소년>은 새연방정부가 수립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한라산 우주과학연구소의 특별 훈련생 용이와 철이, 현옥 세 젊은이가 특별 임무를 띠고서 우주선에 올라 우주정거장을 향해 이륙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우주선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고 주인공들은 유리 바가지를 쓴 우주 괴물들과 싸움을 벌인 끝에 폭발하는 우주선을 탈출해 지구로 귀환한다. 한낙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금성 탐험대>는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우주 개발 경쟁과 함께 로봇을 부리는 외계인과의 싸움을 그린 우주 활극이며, <별들 최후의 날>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은하계의 두 별 사이의 우주 전쟁을 그렸다.
김이구씨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활약한다 △주인공은 보통 두세 명의 복수로 설정되며 여성 인물도 반드시 포함된다 △모험과 미스터리를 활용한다 △과학과 기술이 제기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과학과 기술이 이루어낸 미래 세계를 추체험하도록 한다는 등을 한낙원 과학소설의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문명 간의 타협 없는 대결이 파멸로 이어진다는 <별들 최후의 날>의 내용은 분단 현실을 환기시키는 의미를 지니며, 단편 <사라진 행글라이더> 같은 작품에서 외계인과의 관계가 적대적이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는 우호적인 관계로 그려지는 점도 평화를 향한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출판사 창비는 한낙원의 대표작 <금성 탐험대>를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에 포함시켜 재출간하기로 10일 결정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이구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