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정년퇴직한 뒤 내놓은 첫 장편 <부부의 초상>에서 김원우는 세월의 흐름 속에 비속해져 가는 예술가 부부의 씁쓸한 초상을 그려 보인다. 사진 매일신문 제공
부부의 초상
김원우 지음/강·1만6000원
김원우 지음/강·1만6000원
기자와 화가 부부의 30년 인연
호사가들의 삶과 사회상 담아 김원우의 새 소설 <부부의 초상>은 그가 지난해 여름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뒤 처음으로 내놓는 작품이다. 소설은 지방신문 문화부 기자 출신 ‘안’이 기자 시절 인연을 맺었던 또래 화가 노옥배의 회갑 기념전 초대장을 받고서 화가 부부와의 30년 남짓한 인연을 돌이켜보다가 실제로 전시회에 가기까지의 일주일 정도를 그린다. 2011년 2월에 낸 장편 겸 소설집 <돌풍전후> 이후 2년 반 만에 전작으로 낸 이 소설의 말미에 작가는 무려 11쪽에 이르는 기다란 ‘작가의 말’을 곁들였다. 여기서 그는 소설의 주제를 스스로 요약해 놓았는데, “너무나 평범한 어떤 부부 한 쌍의 낯익은 일상, 손쉽게 속물로 변신해버리는 그들의 소박한 딜레탕티슴과 소부르주아로서의 단단한 능력, 그 주변의 요란딱딱한 생활 습관과 검질긴 제도 일체”가 그것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인환의 통찰대로 “김원우의 소설에는 결정적 행위와 결정적 순간이 없다.”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한 일상의 소소한 세목들을 시시콜콜하게 글로 옮겨 놓는 것이 김원우의 소설들이다. 우리네 현실이란 게 ‘드라마틱한’ 사건과 ‘대단원의 막’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지리멸렬하고 던적스러운 일상의 반복일 뿐이라면, 그 점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게 바로 김원우의 소설이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서사 예술이 미적 충격과 고양이라는 본디의 소용에 더해 사회사적 자료로서도 의미를 지닌다고들 하는데, 그에 관한 한 김원우의 소설을 따를 것이 달리 없어 보일 정도다. 가령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재직하던 1980년대 초중반 지방 신문사 편집국의 풍경은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여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석간 발행 시간에 맞추느라 늦어도 오전 10시 반까지는 모든 원고가 ‘게라쇄’(교정쇄)로 돌아야 하고, 11시30분이면 그 날짜 가판(架板) 전면이 펼쳐진 편집국장 책상 주위에 둘러선 국장과 부장들이 인쇄 전 최종 점검 회의를 하는 장면, 점심 뒤에는 그 날짜 신문으로 얼굴을 덮은 채 시끄러운 휴게실에서 곤한 오수에 빠져드는가 하면 저녁이면 반드시 두 군데 이상 술집을 순례하며 한 집에서 폭탄주 다섯 잔씩은 반드시 마심으로써 ‘건재’를 과시하며, 그러고서도 다음날이면 아직 동도 트기 전에 제일착으로 편집국에 들어서는 편집국장의 면모 등이 그러하다. 물론 김원우의 소설에도 과장이라면 과장이 없지 않다. 김원우 소설의 거의 모든 주인공은 ‘삐딱한 관찰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예의 ‘작가의 말’에는 “일부러라도 짜증과 불평을 일구며 꾸려가는 나날” “내 천성의 앙앙불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이 말들은 소설 화자 ‘안’에게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소설 전편에 걸쳐 이런저런 사안과 현상에 대한 그의 독설은 가히 ‘작렬’하는데, 그 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매스컴의 요식적 치사와 무식한 대중의 일시적 찬사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모로나 상대적으로 열등한 환쟁이들일수록 심하고, 명색 일류라는 것들은 그런 내색을 은근히 감추면서 지 명망을 과대 포장하는 특유의 비책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소설의 결말이 씁쓸한 것이 반드시 주인공의 이런 삐딱한 성질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젊은 시절 각자 화가와 약사 겸 시인으로서 나름의 순수와 예술혼을 견지했던 노옥배와 고유미 부부가 시간의 흐름 속에 비속해진 모습을 확인하는 결말은 ‘부부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해 준다. “저런 변모를 세련이라고 두둔한다면 겉멋·속기(俗氣)·속취(俗臭)에 대한 분별이 모자란달 수밖에. 덩달아 욕심이 사납고, 푼더분한 외모대로 넉살이 좋더니만 마누라쟁이도 한 본이 되고 말았네. 하기야 부부가 성질부터 서로 빼다 박은 듯 닮지 않고서야 더불어 살아내기도 어려울 테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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