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의 폐해를 겨눈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모던 하트>의 작가 정아은은 “우리 사회 많은 문제의 바탕에 교육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교육 현장을 다룬 소설을 다음 작품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문학상 ‘모던하트’ 출간
정아은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헤드헌터 출신 정아은씨 작품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분투
연애와 결혼 둘러싼 고민 담아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정아은 소설 <모던 하트>가 책으로 나왔다. 헤드헌터가 직업인 30대 중반 여성 김미연을 주인공 삼아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고민, 학벌주의와 일상에서의 성 억압 및 차별 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모던 하트>의 장점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헤드헌터라는 직업이 조금 이채롭긴 하지만 주인공이 직장에서 성취를 거두고 조직의 인정을 얻고자 고뇌하고 분투하는 과정은 직장인 독자의 충분한 공감을 살 법하다. 적령기를 넘긴 미혼여성으로서 연애와 결혼 상대를 놓고 저울질하는가 하면 결혼 자체의 필요성 여부를 두고 궁굴리는 고민 역시 또래 여성들의 고민과 방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작가는 까다로운 형식적 장치나 관념 조작 없이 일상의 상황과 어휘로 주인공의 일과 사랑을 그린다. 건강한 세태소설의 한 전범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결혼에 대해 고민할 때 미연이 주된 참조항으로 삼는 것이 먼저 결혼한 여동생 세연의 사례다. 일간지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데다 고시를 핑계 대고 무위도식하는 남편까지 거두는 세연은 ‘슈퍼맘’이라는 이름으로도 모자랄 만큼 초인적인 능력과 헌신성으로 가정을 챙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은 늘 불안정하고 수시로 삐걱거린다. 게으르고 무능력하며 이기적이기까지 한 제부와 그런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동생을 보며 미연은 “절대로, 절대로 결혼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세연 역시 자신이 빠져든 결혼이라는 함정에 치를 떨며 언니더러는 결코 결혼하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미연에게는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세연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다. 물론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면이 있긴 해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가다 보면 가족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따뜻한 끈이 형성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노후에 누구와 끈을 만지작거리며 살게 될까.” 미연이 주변 남자들을 상대로 연애와 결혼 가능성을 줄곧 탐색하는 배경에는 이렇듯 홀몸으로 맞이할 노후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소설 속에서 그는 ‘흐물’과 태환 두 남자와 꾸준하게 만나면서 탐색전을 계속한다. 대부분의 남녀관계가 그러하듯 미연과 두 남자의 관계에서도 관심의 지출과 수입은 비례하지 않는데, 흐물이 미연에게 목매다는 반면 미연의 촉수는 태환 쪽으로 뻗어 있다.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고민에 더해 미연은 자신보다 어린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세대차를 느끼는 동시에 더는 젊다고 하기 힘든 자신의 나이를 갈수록 의식하는가 하면, 명절이면 특히 두드러지는 ‘시월드’의 횡포 그리고 여성 흡연자로서 절감할 수밖에 없는 흡연 여건의 남녀 불평등 따위에 대해서도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다. 기업의 인재를 물색해 다른 회사에 소개해 주는 헤드헌터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문학에서 <모던 하트>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잡 애플리케이션, 오더, 석세스, 피, 케미컬 같은 영어 단어가 난무하며 이직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직장인들과 그들을 이용해 수입을 올리려는 헤드헌터들의 각축전이 생생하게 묘사된 것은 작가 자신의 이 분야 경험에 힘입은 바 크다. 작가는 특히 뿌리깊은 학벌주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 공을 들이는데, 미연의 상사인 최 팀장의 이런 말은 그 현실의 심각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 출신 대학은 낙인이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 경력 좋고 대학원 좋은 데 나와봐야 아무 소용 없어. 대학을 좋은 데 나와야지. 학부를 좋은 데 안 나온 사람은 절대로 에이(A)급이 못 돼. (…) 서울대 대학원, 아니 하버드 대학원 나와도 대학 좋은 데 안 나오면 다 꽝이라고.” 소설 말미에서 미연은 직장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은데다 두 남자와의 관계 역시 회복 불능의 상황에 놓인다. 사면초가라 할 법한 이런 처지에서도 그가 “이제 다음 행선지로 움직일 시간”이라며 스스로 다독이는 모습은 이 작품을 일종의 성장소설로도 읽게 만든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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