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2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문학동네·각 권 1만3800원
미국 대서양 연안의 작은 도시 오로라. 60대 후반인 위대한 소설가 해리 쿼버트의 집 정원에서 33년 전 열다섯살 나이에 실종된 소녀 놀라의 주검이 나온다. 해리 쿼버트의 대표작 <악의 기원> 타자원고와 ‘잘 가, 사랑하는 놀라’라는 메모가 주검과 함께 묻혀 있었다.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해리는 자신이 놀라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악의 기원>이 바로 놀라와 자신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지만 살인 혐의는 부인한다. 해리의 제자인 젊은 작가 마커스 골드먼이 해리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독자적인 조사를 벌이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스위스 태생 젊은 작가 조엘 디케르(28·사진)가 지난해 9월에 내놓은 소설
은 마커스가 놀라 살해 사건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고 당시 자료를 확인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동시에 그것을 소설로 써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프랑스에서는 책 출간 전부터 공쿠르상 후보에 선정되어 네 작품이 나가는 최종 결선에까지 진출했으며 프랑스 젊은작가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고 출간 6개월 만에 70만부가 팔리는 등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공쿠르상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베르나르 피보가 “스위스제 시계 같은 정교함”이라 표현한 대로 이 소설은 매우 잘 짜여 있다. 사건은 단일한 원인과 결과로 설명되지 않으며, 놀라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었거나 책임 있는 인물들은 제 나름의 욕망과 상처가 이끄는 대로 어쩔 수 없이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까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작가의 솜씨는 일품이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밝혀지는 반전의 파괴력은 영화 <식스 센스>에 버금간다.
놀라가 실종된 33년 전, 그와 관련된 한 건의 살인사건이 있었다. 놀라가 어떤 남자에게 쫓겨 숲으로 들어갔으며 얼마 뒤 피를 흘리면서 돌아온 것을 목격한 노부인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건 직후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놀라의 실종과 함께 미제로 처리되었던 이 사건 역시 새삼 수사 대상이 되고, 사건 범인이 좁혀지는 과정에서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서장이 피살되며 단순 사고로 처리되었던 죽음들이 사고가 아닌 살인이었다는 사실 역시 새롭게 밝혀진다.
원한에 의한 복수나 사이코 연쇄살인범과 민완 형사 사이의 두뇌싸움이 아니라, 소설가를 등장시켜서 사건 해결과 그에 관한 소설 쓰기 과정이 나란히 진행되도록 한 구성이 이채롭다. 해리와 놀라의 금지되었기에 한층 애틋한 사랑이 있는가 하면, 시라노 드베르주라크를 연상시키는 ‘대리 사랑’의 안타까움도 만날 수 있다. 예술가를 돕는 뮤즈의 존재, 창작의 고통과 표절의 유혹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며, 작가와 출판사, 에이전트와 미디어가 한 권의 책을 두고 벌이는 요지경 같은 소동을 구경하는 재미도 쑬쑬하다.
범인이 밝혀지고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또 다른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독자는 홀가분한 느낌과 함께 모종의 배신감과 환멸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역시 떨쳐 버리기 어려운데, 그런 독자를 위해서라면 마커스가 스승 해리와 놀라의 관계를 아름답게 그리는 다음 대목을 추천하고 싶다. 이것은 해리와 놀라에게 가능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한 ‘잠재적 현실’이다.
“(나는)열다섯살짜리 놀라 켈러건이 해리를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를 모두 썼다. 해리가 구즈코브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하려고, 글을 쓸 수 있게 하려고,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놀라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던지고 어떤 위험 속에 뛰어들었는지, 놀라가 어떻게 해리의 걸작의 영감을 불러온 뮤즈인 동시에 그 작품을 지켜낸 수호신이 되었는지 썼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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