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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연과 연결된 실마저 끊어내는 인간의 탐욕

등록 2013-08-18 18:40수정 2013-08-18 19:50

작가 최성각(58). 사진 실천문학사 제공
작가 최성각(58). 사진 실천문학사 제공

쫓기는 새

최성각 지음
실천문학사·1만7000원

생태주의자로서 작가 최성각(58·사진)의 삶과 문학은 긴밀히 조응한다. 1989년 생태소설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를 발표한 그는 1990년대 초 상계소각장 건설 반대 싸움에 뛰어들었으며 나중에는 ‘풀꽃세상’이라는 환경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다. 동강댐 건설과 새만금 방조제 축조에 반대하는 투쟁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그 과정을 소설과 산문으로 부지런히 옮겼다. 지금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거위를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고 있다.

<쫓기는 새>는 그가 쓴 생태소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약사여래…>를 비롯해 이미 책으로 묶였던 작품과 잡지에만 발표하고 단행본으로는 내놓지 않았던 작품이 망라되었다. 예전에 출간되었던 작품도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이기 때문에 최성각의 생태소설을 일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 책은 준다.

책은 작품 분량을 기준으로 단편·중편·엽편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중편은 <약사여래…>와 1999년 작 <동강은 황새여울을 안고 흐른다> 두 편이며, 단편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한 다섯으로 책으로 묶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엽편소설은 단행본 <부용산>(1998)과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2000)에 실렸던 것 중 추린 것과 2002~2004년 사이 잡지 <신생>에 연재했던 것들로 이루어졌다.

약수터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환경 파괴하는 물질만능주의 비판
생태작가 최성각의 소설 한데 모아

<약사여래…>는 건강에 대한 염려증과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아울러 커지면서 부쩍 붐비게 된 약수터를 무대 삼아 인간의 탐욕과 생태계의 훼손 사이의 함수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인 작가 ‘그’는 탁한 오줌과 목덜미의 식은땀 같은 몸의 이상 증세를 겪으면서 운동도 하고 건강도 챙길 겸 집 근처 유락산 약수터를 찾는다. 약수터로 이끄는 자신의 마음을 가리켜 그는 “어떤 이상한 종류의 갈증”이라 표현하는데, 그 갈증은 약수터에서 반은 채워지고 반은 채워지지 않는다. “물에 대한 사람들의 적대적이고도 이기적인 독점욕에서 풍기는 악취”가 그의 갈증 해소를 훼방 놓는 것.

약수터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에 환멸을 느끼던 그의 눈에 약사전 벽에 그려진 불화 한 점이 들어온다. 과일이 탐스럽게 달린 뜰의 나무와 앓아누운 여인의 손목이 희고 가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그림이었다. 주인공은 어쩐지 그림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 가느다란 실이 위태롭다고 생각하는데, 소설 마지막 장면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을 목격하는 상황으로 처리된다. “실은 툭 끊어져 뜰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여인의 손목은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었다.” 이 대목이, 자연환경과의 연결이 끊기면서 인간의 건강과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현실에 대한 상징임은 물론이다.

<동강은…>은 강원도 청정 지역을 흐르는 동강에 댐 건설 계획이 발표되면서 그를 기화로 ‘한탕’을 노리는 이들과 댐 건설에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회원이었던 산삼 심기 모임 ‘농심마니’의 성명서가 인용되어 있는데, 거기 쓰인바 “환경문제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 내부의 탐욕과 부패, 무관심의 문제”라는 구절은 이 소설집과 최성각의 생태문학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6년여 동안 정신병원 등에 갇혀 있어야 했던 네팔 여성 찬드라 사건과 관련해 작가는 자신이 이끄는 단체 풀꽃세상을 통해 성금을 모금해 찬드라 가족에게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일을 고스란히 담은 엽편소설에서 한 인물은 작가에게 ‘환경단체가 왜 인권 문제에 관여하는가?’ 묻는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 역시 생태주의의 너른 오지랖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환경문제를 일으킨 깊은 뿌리 속에는 자연이나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타자화하고 수단으로 여기는 물질만능주의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실천문학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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