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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석전리 사람들이 찾아나선 새 세상

등록 2013-08-18 20:10

영년 1
박흥용 글·그림
김영사·1만1000원
국가가 국민을 너무 힘들게 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를 꿈꾸게 된다. 위임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횡포를 부릴 때, 민초들 처지에서 보자면 그놈이 그놈인데 어느 편인지 선택을 강요할 때, 급기야 전쟁을 일으키고 불신을 조장하고 국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 때 더러운 세상, 뒤바꾸고 싶은 강한 열망에 휩싸인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작가 박흥용(51)씨의 새 장편만화 <영년>에도 그런 열망이 꿈틀댄다. <구르믈…>에서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을 배경으로 했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한국전쟁 당시를 주목했다. 해방, 남한에 들어선 미군정, 남한 단독정부 수립, 그리고 이어진 남북 사이의 전쟁까지 겪으며 국민들은 갈가리 찢겼다. 책의 공간 배경이 되는 석전리 마을도 그랬다.

석전리는 잔칫날이면 위아래 동네가 모여 돌팔매 싸움인 ‘석전희’를 벌이는 시골 마을이었다. 잔칫날마다 청년들이 돌을 맞아 피 흘리는 특이한 광경이 연출되긴 했지만 어쨌든 소박하게 살아갔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을 갔다 온 봉석이가 미쳐버려 헛소리를 하고 다녀도 모두들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챙겼다. 그런 마을에도 피바람이 불었다.

대학을 마친 뒤 고향에 돌아와 있던 양조장 박판주씨의 아들 경수는 친구들에게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비겁자”라는 조롱을 듣는다. 전쟁이 나자 남쪽이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학살했고 북한군이 마을까지 밀려들자 경찰의 가족까지 몰살됐다. 돌팔매하며 놀던 청년들이 완장을 찼고 이들은 또다시 밀려온 군인들에게 처형됐다. “넌 어느 편이냐? 북이냐, 남이냐?” 경수는 동네 사람에게 멱살을 잡힌다.

그림 김영사 제공
그림 김영사 제공
“오빠, 나 이 동네가 무서워.” 경수의 동생 경희가 말했다. 경희 역시 여맹(북한 노동당의 여성 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죽을 뻔했다. 경희는 비밀을 털어놓으며 오빠에게 떠날 것을 제안한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던 봉석이 삼촌이 죽기 전 자신에게 ‘강제 징용 가서 만들었던 일본인들의 군량미 저장 동굴 위치’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거기엔 엄청난 군량미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박씨 남매는 동네 사람들에게 계획을 말하고 새 세상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73명의 피난민, 아니 새 세상 주민들은 끝을 알 수 없는 길에 오른다. 경희의 목숨과 군량미 저장 동굴 지도를 뺏고자 하는 정체 모를 이들의 추격을 받으며 그들은 걷고 또 걷는다. 무리 안은 또다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고 불신도 싹튼다. 훗날 엄청난 군량미를 어찌 나눌까도 걱정이다. 이들이 길 끝에서 새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영년>은 새 세상의 시작 ‘0년’을 뜻한다. 묵직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추리물의 긴장감과 재미를 놓지 않는 만화의 2권이 기대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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