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 소설가. 사진 문학동네 제공
인호가 설계한 수복지구 기념관은
성옥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는 집
슬픔 딛고 희망 찾아가는 ‘착한 여정’
성옥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는 집
슬픔 딛고 희망 찾아가는 ‘착한 여정’
이경자 지음
문학동네·1만2000원 이경자(사진) 소설 <세 번째 집>의 표지에는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집 한 채와 거기 깃든 남녀의 그림이 실려 있다. 여자는 계단 아래 지하방 의자에 앉아 있고, 계단을 거쳐 올라가는 베란다에 기댄 남자가 그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설 주인공인 탈북 여성 성옥과 건축가 인호가 그 남녀다. “성옥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줄게. (…) 집 짓는 남자니까.” 인호가 성옥을 위해 그려준 집이 책 표지에 있는 집은 아닐 것이다. 그 집은 성옥이 지금 살고 있는 어둡고 습한 반지하방이고 성옥 생애의 두 번째 집에 해당한다. 첫 번째 집은 그가 탈북하기 전 식구들과 함께 살았던 ‘하모니카집’. 한 칸씩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었대서 그렇게 불렸다. 책 제목 ‘세 번째 집’은 인호가 성옥에게 그려주는, 희망과 가능성으로서의 집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탈북 여성 성옥이 고통과 슬픔을 딛고 희망과 사랑으로 향해 가는 이야기다. 탈북자들이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겪는 위기와 수난, 남한에 정착하느라 감당해야 하는 차별과 부적응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증언과 예술 작품이 나와 있다.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탈북자’라는 이름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북한 이탈 주민들 사이의 개성과 차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여기는 자본주의 세상이라서 무섭다.”(명숙) “이모님, 저는 자본주의가 좋습니다.”(남혁) “돈이 자유다! 그래도 고향은 그립다! 눈물난다!”(혜교) 공화국 영웅을 부모로 둔 명숙 이모는 남쪽으로 내려와서도 북한 체제에 대한 험담을 삼가며 남한 자본주의에 거리를 두려 한다. 꽃제비 출신으로 틈만 나면 이어폰을 꽂고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대학생 남혁에게 남한 자본주의는 자유와 성공이 보장된 천국과 마찬가지다. 이름부터 남쪽 연예인의 것으로 바꾸고 유흥업소에서 웃음과 몸을 파는 혜교는 제 인생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다. 주인공 성옥에게는 남들과 조금 다른 사연이 있다. 그의 부모는 지난 시절 일본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귀국자’였던 것. 와세다대학 출신 엘리트였던 아버지는 북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차별과 감시의 대상이 된 현실에 분개해 김일성 부자를 저주하다 죽어간다. 성옥의 탈북 역시 ‘귀국자’라는 부모의 신분과 무관하지 않았다. 소설은 성옥이 아버지의 흔적을 좇아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이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래의 인용문은 알려준다. “두 개의 땅 사이에서 확인해볼 몇 개의 운명 때문에 성옥은 비행기를 타야 했다.” 식당과 커피 전문점 등에서 접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힘겹게 대학을 다니는 성옥이 일본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인호의 경제적 도움 덕분이었다. 그런 인호에게 성옥은 묻는다. “선생님은 왜 저 같은 여자에게 잘해주세요?” 이에 대해 인호는 “우린 같은 사람이잖니”라고 답하는데, 인호의 호의는 물론 너른 의미의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동시에 젊고 예쁜 이성에 대한 끌림이기도 함은 물론이다. 건축사무소에 다니는 인호는 수복지구 기념관 설계를 맡으면서 한층 성옥에게 가깝게 접근한다. 성옥을 향한 사랑과 기념관 설계 작업이 그에게는 둘이 아닌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인호가 설계한 기념관이야말로 성옥을 향한 그의 사랑을 증거하는 ‘세 번째 집’인 셈이다. “성옥이 없었다면 이 건물에 생명을 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성옥을 통해 인호는 선과 공간의 영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쏟은 열정이 사랑이었음을 인호는 깨달았다.” <세 번째 집>은 착한 소설이다. 성옥을 향한 인호의 마음씀이 착하고, 두 사람이 크고 작은 장애를 딛고 사랑을 완성해 가도록 하는 작가의 선택이 또한 착하다. 미학적이거나 현실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그 착함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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