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의 지구사
로라 와이스 지음, 김현희 옮김
휴머니스트·1만6000원
로라 와이스 지음, 김현희 옮김
휴머니스트·1만6000원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 차가운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진다. 길가의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갈까, 구멍가게 아이스크림 통에 얼굴을 넣어볼까. 나약한 인간의 오감을 감싸주는 아이스크림, 그 역사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 피자, 초콜릿, 커리 등을 주제로 삼은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시리즈 중 하나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역사엔 역설적으로 권력자, 식민지, 전쟁, 세계화 같은 단어가 가득하다. 우선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조금 밍밍하긴 하지만 얼음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1세기 지구인들에게 아이스크림과 빙수, 그리고 그냥 얼음은 전혀 다른 음식이지만 그 옛날 그런 구분이 어디 있었으랴. 한여름에 차가운 무언가를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사치였던 시절이다. 자연히 얼음을 가진 자들은 권력자들이었다.
책은 고대 로마 시대를 보면 네로 황제가 와인이나 꿀로 맛을 낸 차가운 음료를 즐겼다고 소개한다. 이를 위해 고대인들은 산꼭대기에서 눈이나 얼음을 가져와 구덩이에 지푸라기를 덮어 보관해야 했다.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얼음 저장고가 있었다고 하고 기원전 1100년 즈음 중국에서도 얼음을 저장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아시아, 유럽, 북미 등 다양한 지역에 직접 가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자료를 뒤져 책을 썼는데 아쉽게도 한국은 빠져 있다. 다행히 주영하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교수가 감수를 맡아 한국편을 직접 썼다. 한반도의 얼음 저장고 관련 기록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오는데 신라의 왕들이 얼음 저장고를 만들라 지시했음을 알 수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전까지 빙고 업무는 왕실의 관할이었다. 이후에는 제빙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19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영향을 받아 경성 거리에 빙수집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는 여름만 되면 아이스크림 장수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식민지 시기에 아이스크림이 퍼져나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거나, 젤라토, 소르베토 같은 제작 방식을 발전시킨 곳은 유럽이었으나 대중화는 유럽인들이 식민지로 차지한 미국 대륙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아이스크림은 상류층 식민지 개척자들의 디저트로 식탁에 오르게 됐다. 뉴욕, 필라델피아 같은 도시에서 제과업자들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았다.
액체 상태의 아이스크림이 얼 때까지 저어줘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 기계의 발명에 이어 천연 얼음이 아닌 인공 얼음 제조 방식이 퍼지면서 아이스크림 생산은 대량화의 시대로 넘어간다. 미국 남북전쟁 때 천연 얼음의 공급이 끊기자 인공 얼음 개발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미군 지도부는 남태평양 섬에 군인들을 위한 아이스크림 공장을 세웠다.
1951년 즈음에는 공장에서 만든 포장된 아이스크림이 미국 아이스크림 판매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돼 보관도 쉬워졌다. 1946년에 데어리 퀸, 1953년에 배스킨라빈스, 1959년에 하겐다스 등이 문을 열고 체인사업을 시작했다.
한편 1962년에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친형인 이병각씨가 설립한 삼강유지화학이 일본 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아이스크림 하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롯데제과가 삼강을 인수하고 해태가 아이스크림 생산에 뛰어든 1970년대 이후 우리는 오늘날처럼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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