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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조자룡으로 재탄생한 ‘까치’

등록 2013-09-01 19:51

이현세(59)씨. 사진 녹색지팡이 제공
이현세(59)씨. 사진 녹색지팡이 제공

만화 삼국지 1~10
이현세 지음/녹색지팡이
각 권 1만2000원

살아 있는 자에게 붙은 ‘전설’이란 칭호는 영광이자 부담이다. 마음은 왕성히 활동할 때와 다르지 않은데 몸은 무대 밖에 앉아 자신이 만들었던 ‘불후의 명곡’을 멋지게 부르는 후배들에게 박수만 보내야 한다면 묘하게 불행할 수 있다. 198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 등 히트작을 쏟아내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만화가 이현세(59·사진)씨는 그래서 전설로만 남길 거부했다. 3년 넘게 공들여 그린 <만화 삼국지> 열 권을 한꺼번에 세상에 내놓은 그를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절 모르는 지금의 10대들에게 ‘이현세 할아버지’로 새롭게 인사하겠다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읽는 만화가 되면 좋겠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로서 원작의 영화화, 스포츠신문 연재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1998년 그는 갑작스레 송사에 휘말렸다.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된 뒤 첫 타깃은 만화였고 그가 쓴 <천국의 신화>가 음란물로 낙인찍혔다. 출판사에 계약금까지 물어줘 가며 그는 홀로 6년 동안 법정 싸움에 나섰다. 2003년 1월에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남은 것은 술, 담배에 찌들어 병든 몸과 끊어져버린 만화가로서의 경력뿐이었다.

“다시 만화를 그리려니 이현세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더는 이현세의 만화는 읽지 않는 세상이더라고요.” <천국의 신화> 마무리 작업을 마친 뒤 2007년 자신을 기억하는 40대, 50대를 위한 골프 만화 <버디>를 그렸다. <버디>를 빼고는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 등 역사물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50대는 이현세가 홀로서기를 다시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60이 됐는데 어느 정도 홀로 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예순이 다 되어 내놓은 <삼국지>는 그런 의미죠.”

이현세의 삼국지는 인물이 중심이다. 그는 명분과 각종 책략, 싸움의 결과를 소개하기보다는 각 인물의 개성, 사람 사이의 관계에 치중했다. 어떤 순간에 영웅과 패자가 갈리는지, 똑같은 재능을 가졌다 해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지만 유약한 울보 유비, 전투력은 강하지만 자존심 세고 포용력이 떨어지는 관우, 웃음 제조를 담당하는 장비, 가장 고집스러운 수염을 가진 조조, 탐욕 덩어리 동탁 등 인물의 개성은 만화 캐릭터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만화 삼국지
만화 삼국지

이현세 ‘만화 삼국지’ 10권 출간
인물의 개성과 관계에 초점 둬
“아이들 야성의 DNA 깨웠으면”

그의 만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캐릭터인 ‘까치’는 삼국지의 조자룡으로 재탄생했다. 상투 틀고 갑모 쓴 인물들 사이로 푸른색 까치 머리 조자룡은 불쑥 튀어나온다. 눈치챘겠지만 이현세가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조자룡이라 한다. 전쟁터에서 죽고 싶다는 순수한 무사의 모습과 자유분방함을 매력으로 꼽는다. 그는 줌 인, 아웃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오버랩 컷을 활용해 영화적 연출력을 과시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든 판매용 시리즈와 별도로 작가의 말맛을 살린 내레이션이 살아 있는 ‘무삭제판’ 버전도 비매품으로 제작했다.

그는 유독 신의, 우정, 야성을 중시한다. 아홉 살 때 갑작스런 누전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삼촌도, 형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오로지 스포츠신문 연재만화나 영웅물 속의 남성들을 보며 롤모델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고우영 만화가의 <삼국지>와 <수호지>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유비, 장비, 관우의 도원결의에 감동받은 그는 지금까지 초등학교 시절 4인방 친구들과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형제들과 한 방에서, 친구들과 골목에서 싸우고 경쟁하다가도 다른 집 형제들이나 이웃마을 아이들이 시비를 걸면 똘똘 뭉쳤던 옛날이 떠오른다”며 “컴퓨터, 스마트폰 등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지내는 요즘 아이들이 삼국지를 통해 야성의 디엔에이를 깨우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70살부터는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동화를 그릴 예정이다. “내가 선택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딱 10년 남았다”니 마음이 바쁘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웹툰의 등장으로 데뷔는 쉬워졌지만 만화가들이 안정적으로 작품을 연재하거나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시대에 후배와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길을 개척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1년 반 전 위암 수술을 하고도 왕성히 활동하는 이현세 작가, 삼국지에는 그 전설적인 땀 냄새가 배어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녹색지팡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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