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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쓰레기 줍는 인도 빈민촌
이곳에도 희망이 있을까

등록 2013-09-01 20:06수정 2013-09-02 11:34

한 주를 여는 생각

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
반비 펴냄
전세계 빈곤층의 3분의 1, 기아 인구의 4분의 1이 인도에 산다는 사실은 사실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숫자의 한계다. 쓰레기를 뒤지다가 찢기고 썩어버린 손가락, 비통한 노인의 얼굴을 한 인도 빈민층 아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숫자만으론 알 수 없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기자 캐서린 부는 2007년부터 4년 동안 인도의 가장 현대적인 도시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에 사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여자와 어린이에 집중했다. 책의 뼈대가 되는 ‘파티마 샤이크’란 장애 여성의 분신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168명을 거듭 인터뷰했고 3000건의 공공자료를 뒤졌다. 그렇게 나온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인도의 지독한 불평등 문제를 어떤 전문가의 보고서보다 강력하게 고발한다.

안나와디는 인도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 바로 옆, 유명 호텔 다섯 개에 에워싸여 있는 무허가 동네다. 책에는 공항과 호텔에서 쏟아져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운 좋은 날이면 하루 33센트를 버는 열두살 고아 수닐, 부모와 오빠들에게 맞다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자살한 열다섯 미나, 호텔 웨이터가 되어 깨끗한 냅킨을 만지며 살고픈 소년 미르치, 빈민촌을 뜯어먹어 제 살을 불리며 빈민촌장을 꿈꾸는 여성인 아샤, 그리고 병뚜껑에서 플라스틱을 기가 막히게 분류해내는 십대 고물상 압둘이 등장한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희망마저 썩어갔다. 빈민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빈곤과 부패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만 나락에 떨어뜨린 게 아니라 도덕관념도 위축되게 했다. 아이들이 사는 그곳엔 돈과 함께 인간의 존엄도 말라가고 있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의 한 소녀가 낡은 자전거를 타며 웃고 있다. 그 뒤로 마을의 공터와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보인다.  ⓒ수디프 셍굽타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의 한 소녀가 낡은 자전거를 타며 웃고 있다. 그 뒤로 마을의 공터와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보인다. ⓒ수디프 셍굽타

‘꽃밭 사이의 똥’ 뭄바이 빈민촌의 절망

최신식 국제 공항과 호텔이 즐비한 도심 한 가운데 하늘서 뚝 떨어진 더러운 마을.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 아이들은 저마다의 지옥에 산다. 고물을 훔치던 소년 칼루는 불량배들에게 맞아 죽었고 매일 부모에게 맞던 소녀 미나는 원치 않는 결혼을 하기 전 자살을 했다.

21세기 인도는 중국에 이어 경제 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다.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로 8시간 떨어진 뭄바이는 인도에서도 대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이자 금융의 중심지다. 시골 사람들은 꿈을 안고 뭄바이로 향했다. 돈과 빈민이 한꺼번에 몰려든 도시는 양쪽 극단으로 빠르게 내리달았다. 빈민촌 아이들은 굶주린 채 국제 공항과 하얏트 호텔에서 나온 쓰레기를 뒤졌다.

이곳에 미국 기자인 캐서린 부(49)가 갔다. <워싱턴 포스트>를 거쳐 <뉴요커>에 몸담고 있는 그는 20여년의 기자 생활 내내 미국의 빈곤층을 포함한 가난의 문제를 탐구했고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인도 남자와 결혼을 한 뒤 인도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눈을 떴다. 그는 “인도에 대한 논픽션이 너무도 부족했다”며 “인도에 애착을 갖게 될수록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책에 밝혔다.

<안나와디의 아이들>(반비 펴냄)은 2007년부터 4년 동안 안나와디의 사람들을 취재한 심층 르포다. 파티마라는 장애여성의 분신 사건을 중심으로 주민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을 소개하며 빈민촌 깊숙한 곳으로 전진한다. 모든 이름은 실명이다. 파티마 분신 사건은 168명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을 만큼 “소수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할 거라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3000건이 넘는 공공자료도 뒤졌다.

이런 사실을 밝혀두는 까닭은 르포의 구성과 전개가 매우 소설적이기 때문이다. 인물의 심리 묘사, 사건의 디테일, 책 읽는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 등은 어느 소설에 뒤지지 않는다. 빈곤과 불평등의 실태를 알려주는 차원에서 어느 보고서보다 깊이있다. 취재력과 글솜씨를 갖춘 기자가 쓴 르포의 힘이다.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는 더러운 물웅덩이를 둘러싸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335채의 판잣집에 사는 3000명이 넘는 주민들은 대개 일자리를 찾아 인도 전역에서 흘러온 이주민들이다. 콘크리트 공장에서 날아오는 먼지로 공기는 늘 뿌연 회색빛이다. 빈민촌은 다섯 개의 유명 호텔에 둘러싸여 있다. 그 너머로는 인도 최대의 국제 공항 활주로가 펼쳐져 있다. 하늘에서 보면 우아한 현대식 시설 틈바구니에 웬 더러운 마을이 뚝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파티마의 분신 사건은 고물상을 운영하던 압둘 가족을 나락으로 떨어뜨림과 동시에 인도 사회가 얼마나 부패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식구가 열한 명인 압둘네 옆집에는 다리가 하나뿐인 여자 파티마가 살았다. 어느날 이웃인 압둘네 가족과 다툼이 생기자 파티마는 그들에게 폭행당했다는 거짓 신고를 하고는 분신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진짜 죽고 말았다.

“옆집 사람들이 나한테 불을 질렀다”는 말을 남기고 파티마가 죽자 경찰은 압둘의 아버지와 누나, 압둘을 끌고 가 무조건 매질을 시작했다. 안나와디의 촌장이 되고자 하는 여성인 아샤, 조사를 담당한 경찰과 주정부 특수 행정관까지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했다. 어린 압둘은 비로소 인도에서는 무죄와 유죄도 폴리우레탄 포대처럼 사고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압둘이 감옥에 끌려가자 평소 “우리는 장미 꽃밭 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라며 호텔 웨이터처럼 깨끗한 직업을 꿈꿨던 동생 미르치는 말없이 쓰레기 더미 위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장애여성 분신 사건 관련자
168명과 반복적인 인터뷰를 했다
2007년부터 4년 동안 취재하며
주민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고물을 훔치며 살던 아이는
불량배들에게 맞아 죽었다
형사는 사인을 불치병으로 결론냈다
공립병원은 폐결핵으로 기록했다
부패한 세상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지옥에 산다. 열한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고아원에서 쫓겨난 수닐은 먹지 못해 키가 크지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지다 피부가 찢어진 곳에 구더기가 슬고 머리에 이가 끓어도 더 나은 넝마주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쓰레기를 차지하려는 빈민들의 경쟁이 험악해지자 그는 위태로운 돌담 위에 올라가 깡통을 줍기 시작했다. 운이 좋으면 하루 33센트를 벌었다. 도둑질을 시작하고서야 수닐의 키는 자라기 시작했다.

고물을 훔치며 살던 열다섯살 칼루는 불량배들에게 맞아 반쯤 벌거벗겨진 채 죽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사인이 ‘불치병’이라고 보고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공립병원인 쿠퍼 병원의 시체 보관소에서는 한술 더 떠 칼루가 폐결핵으로 죽었다고 기록했다. 차에 치이고도 주민들이 외면해 길에 방치됐다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넝마주이 노인도 비슷하게 처리됐다.

빈민촌의 유일한 여대생인 만주는 어머니가 시집보내 버릴까봐 두려워한다. 그의 친구 미나는 외출만 해도 부모와 오빠들에게 구타를 당할 정도로 억압받으며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빈민촌에서 가장 큰 야망을 불태우는 여성은 만주의 어머니인 아샤다. 자신과 같은 ‘하위 카스트’의 이주민들을 뭄바이에서 쓸어내고 싶어하는 ‘시브 세나’라는 정당에 빌붙어 빈민촌장이 되고자 한다.

부패한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여성, 하위 카스트, 빈민을 위한 것이라고 만들어놓은 제도는 부패한 관리와 영리한 부자들의 배를 채워줄 뿐이다. 경찰도 의사도 공무원도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움직였다. 덜 약한 빈민이 더 약한 빈민을 착취했고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이익 앞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힘들 때면 부자들이 버린 하얀 수정액 찌꺼기를 모아 불며 환각에 빠졌다.

빈민촌 사람들은 선거에 매우 열심히 참여했는데 책은 그 이유를 “이 순간만큼은 인도의 다른 국민과 평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하위 카스트의 이주민이나 무슬림 등 바로 자신들을 혐오하는 당에 표를 주면서도 “그래도 여기 와서 얼굴이라도 내미는 건 그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안나와디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선거에서 결국 현역 의원 대부분이 자리를 지켰고 총리는 재신임됐다. 선심성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안은 선거가 끝나자 보류됐고 민영화된 공항 옆으로는 빈민촌 철거를 위한 불도저가 지나다녔다.

그곳에 아직도 소년 압둘은 산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갔지만 끝까지 타락하지 않고 마침내 “더러운 물이 아니라 얼음이 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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