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는 진리, 율곡은 현실을 향했다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엮음
홍익출판사·1만5800원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 이이(1536~1584)는 조선 유학사의 두 거봉이다. 두 사람은 같은 성리학자이면서도 그리스의 두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서로 다른 이상을 좇았다. 율곡은 홍안 청년이었던 23살에 당시 이미 노학자였던 58살의 퇴계를 찾아가 만났고, 이들은 그 뒤로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토론을 나눴다. ‘세기의 만남’이라 할 두 사람의 교류는 뜻밖에도 여태 책으로 정리된 바 없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동양철학자 이광호 연세대 교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와 편지를 모두 모아 번역하고, 퇴계가 사망한 뒤 율곡이 지은 만사와 제문도 함께 넣어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달랐는가? 엮은이는 “퇴계의 삶의 방향은 하늘, 곧 궁극적인 진리를 향했고, 율곡의 삶의 방향은 땅, 곧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향했다”고 평가한다. 퇴계의 입장에서 율곡을 보면 도덕의 본원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가능한 반면, 율곡의 입장에서 퇴계를 보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물러나기만 좋아한다고 평가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두 사람이 벌인 치열한 토론을 소개하며, 엮은이는 “인문학은 다양한 관점을 모두 수용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관점이 없이 허심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미국의 ‘끊임없는 전쟁’의 비밀
워싱턴 룰
앤드루 바세비치 지음, 박인규 옮김
오월의봄·1만5500원 2003년 조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던 버락 오바마는 2013년 시리아 공격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변화를 외치는 ‘진보적’ 대통령이 들어서도 미국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은이는 미국의 시스템 자체가 ‘영원한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끝없이 군사력을 확장하고 전쟁을 벌이도록 미국 정치와 군부의 구조가 계속 진화해 왔기 때문에,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더라도 ‘지구의 경찰’ 노릇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국제질서를 운영할 특권과 책임을 갖고 있다는 ‘미국의 신조’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세계적 개입주의의 ‘성 삼위일체’가 강고한 워싱턴 룰을 형성했다. 미국의 관리와 기업가, 로비스트, 군 장성, 국가안보기구, 언론인, 학자들은 이 틀을 통해 큰 이익을 얻는다. 지은이는 냉전 초기 비밀리에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전략공군사령부(SAC)의 주역들, 베트남전부터 아프간전까지 긴 전쟁 목록에서 미 군부와 관리들이 수행한 역할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23년간 미군 장성으로서 미 군부를 속속들이 경험했고 이후 보수적 정치학자로 활약했던 지은이의 반성에 기초한다. 그는 9·11 이후 현실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으며, 그의 아들은 이라크전에서 전사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스페인 문화의 고갱이는 ‘혼종성’
스페인 문화 순례
김창민 엮음
서울대출판문화원·3만5000원 대학교 강의로 치면 서어서문학과에서 개설하는 ‘스페인 문화의 이해’ 정도가 되겠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기획했는데, 스페인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품은 생활인들을 위한 입문서다. 필자들은 “스페인에 대한 고정관념들” 탓에 별로 조명되지 못한 스페인 문화의 여러 요소를 소개하려 한다. “지리적 다양성을 지닌 이베리아 반도라는 공간”에 “다양한 이민족”이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스페인 문화의 ‘혼종성’이 14편의 글이 기대는 중심축이다. 혼종성에 기반해 발달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들이 소개된다. 이를테면 스페인 하면 익히 떠올리는 “남부 안달루시아의 긴박감 넘치는 플라멩코”뿐만 아니라, “북부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켈트 음악, 둘씩 짝지어 경쾌하게 춤을 추는 중부지역의 호타, 우리의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카탈루냐의 사르다나”가 언급되는 식이다. 15~17세기 황금시대부터 20세기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역사가 간략히 소개된 뒤 문학, 영화, 투우, 축제, 음식 등 스페인 문화의 여러 구성 요소가 펼쳐진다. 특히 회화, 건축에 책의 상당 부분이 할애된다. 17세기 벨라스케스와 18세기 고야뿐 아니라 그들 사이에 존재한 미술가들의 작품도 실렸다. 20세기 초 피카소, 달리 등이 세계 대전과 스페인 내전의 시대를 살면서 구축한 아방가르드한 작품 세계와 그 변화 과정도 흥미롭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흑역사’까지 담아낸 2000년 교황사
교황의 역사
호르스트 푸어만 지음, 차용구 옮김
길·2만2000원 거룩한 아버지,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리스도의 대리자, 그리스도가 준 열쇠로 하늘나라를 열고 닫는 권한을 지닌 자. 다양한 정의만 보더라도,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은 “하늘과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할 정도의 힘”을 지녔다. 그 힘은 역사적 지속성에서 비롯된다. 교황권 제도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권력통치 시스템으로, 가톨릭에 반대했던 아돌프 히틀러조차도 영속적인 권력을 누리기 위해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회의)와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했을 정도다. 중세사 전문가인 지은이는 기존의 교회사적 관점 대신 역사가의 눈으로 ‘권력 다툼으로 흘린 피의 산물’로서 교황사를 다룬다. 콘클라베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교황청의 재정기반은 무엇인지 등 기본 지식과 함께 ‘초대 교황’ 베드로부터 올해 자진 사퇴한 베네딕토 16세까지 2000여년간 교황을 지낸 인물들을 소개한다. 영토 확장과 군사력 확대를 위해 애쓰거나 매관매직을 서슴지 않았던 교황의 ‘흑역사’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추락했다 해도 교황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세계적 지도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교황 중 처음으로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어준 현 교황 프란치스코, 공장·교도소 등을 걸어서 찾아다니며 낮은 자들을 위로해 ‘조니 워커’란 별명이 붙었던 요한 23세 등의 사례는 탐욕과 이기심에 젖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적신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광호 엮음
홍익출판사·1만5800원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 이이(1536~1584)는 조선 유학사의 두 거봉이다. 두 사람은 같은 성리학자이면서도 그리스의 두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서로 다른 이상을 좇았다. 율곡은 홍안 청년이었던 23살에 당시 이미 노학자였던 58살의 퇴계를 찾아가 만났고, 이들은 그 뒤로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토론을 나눴다. ‘세기의 만남’이라 할 두 사람의 교류는 뜻밖에도 여태 책으로 정리된 바 없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동양철학자 이광호 연세대 교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와 편지를 모두 모아 번역하고, 퇴계가 사망한 뒤 율곡이 지은 만사와 제문도 함께 넣어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달랐는가? 엮은이는 “퇴계의 삶의 방향은 하늘, 곧 궁극적인 진리를 향했고, 율곡의 삶의 방향은 땅, 곧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향했다”고 평가한다. 퇴계의 입장에서 율곡을 보면 도덕의 본원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가능한 반면, 율곡의 입장에서 퇴계를 보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물러나기만 좋아한다고 평가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두 사람이 벌인 치열한 토론을 소개하며, 엮은이는 “인문학은 다양한 관점을 모두 수용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관점이 없이 허심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앤드루 바세비치 지음, 박인규 옮김
오월의봄·1만5500원 2003년 조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던 버락 오바마는 2013년 시리아 공격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변화를 외치는 ‘진보적’ 대통령이 들어서도 미국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은이는 미국의 시스템 자체가 ‘영원한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끝없이 군사력을 확장하고 전쟁을 벌이도록 미국 정치와 군부의 구조가 계속 진화해 왔기 때문에,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더라도 ‘지구의 경찰’ 노릇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국제질서를 운영할 특권과 책임을 갖고 있다는 ‘미국의 신조’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세계적 개입주의의 ‘성 삼위일체’가 강고한 워싱턴 룰을 형성했다. 미국의 관리와 기업가, 로비스트, 군 장성, 국가안보기구, 언론인, 학자들은 이 틀을 통해 큰 이익을 얻는다. 지은이는 냉전 초기 비밀리에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전략공군사령부(SAC)의 주역들, 베트남전부터 아프간전까지 긴 전쟁 목록에서 미 군부와 관리들이 수행한 역할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23년간 미군 장성으로서 미 군부를 속속들이 경험했고 이후 보수적 정치학자로 활약했던 지은이의 반성에 기초한다. 그는 9·11 이후 현실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으며, 그의 아들은 이라크전에서 전사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김창민 엮음
서울대출판문화원·3만5000원 대학교 강의로 치면 서어서문학과에서 개설하는 ‘스페인 문화의 이해’ 정도가 되겠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기획했는데, 스페인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품은 생활인들을 위한 입문서다. 필자들은 “스페인에 대한 고정관념들” 탓에 별로 조명되지 못한 스페인 문화의 여러 요소를 소개하려 한다. “지리적 다양성을 지닌 이베리아 반도라는 공간”에 “다양한 이민족”이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스페인 문화의 ‘혼종성’이 14편의 글이 기대는 중심축이다. 혼종성에 기반해 발달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들이 소개된다. 이를테면 스페인 하면 익히 떠올리는 “남부 안달루시아의 긴박감 넘치는 플라멩코”뿐만 아니라, “북부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켈트 음악, 둘씩 짝지어 경쾌하게 춤을 추는 중부지역의 호타, 우리의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카탈루냐의 사르다나”가 언급되는 식이다. 15~17세기 황금시대부터 20세기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역사가 간략히 소개된 뒤 문학, 영화, 투우, 축제, 음식 등 스페인 문화의 여러 구성 요소가 펼쳐진다. 특히 회화, 건축에 책의 상당 부분이 할애된다. 17세기 벨라스케스와 18세기 고야뿐 아니라 그들 사이에 존재한 미술가들의 작품도 실렸다. 20세기 초 피카소, 달리 등이 세계 대전과 스페인 내전의 시대를 살면서 구축한 아방가르드한 작품 세계와 그 변화 과정도 흥미롭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호르스트 푸어만 지음, 차용구 옮김
길·2만2000원 거룩한 아버지,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리스도의 대리자, 그리스도가 준 열쇠로 하늘나라를 열고 닫는 권한을 지닌 자. 다양한 정의만 보더라도,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은 “하늘과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할 정도의 힘”을 지녔다. 그 힘은 역사적 지속성에서 비롯된다. 교황권 제도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권력통치 시스템으로, 가톨릭에 반대했던 아돌프 히틀러조차도 영속적인 권력을 누리기 위해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회의)와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했을 정도다. 중세사 전문가인 지은이는 기존의 교회사적 관점 대신 역사가의 눈으로 ‘권력 다툼으로 흘린 피의 산물’로서 교황사를 다룬다. 콘클라베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교황청의 재정기반은 무엇인지 등 기본 지식과 함께 ‘초대 교황’ 베드로부터 올해 자진 사퇴한 베네딕토 16세까지 2000여년간 교황을 지낸 인물들을 소개한다. 영토 확장과 군사력 확대를 위해 애쓰거나 매관매직을 서슴지 않았던 교황의 ‘흑역사’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추락했다 해도 교황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세계적 지도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교황 중 처음으로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어준 현 교황 프란치스코, 공장·교도소 등을 걸어서 찾아다니며 낮은 자들을 위로해 ‘조니 워커’란 별명이 붙었던 요한 23세 등의 사례는 탐욕과 이기심에 젖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적신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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