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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삼계탕은 옛 문헌에 없는 이름”

등록 2013-09-08 20:11

4일 경기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주영하 교수. 입구에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개다리소반 밥상을 받고 있는 조선 남자의 사진이 붙어있다.
4일 경기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주영하 교수. 입구에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개다리소반 밥상을 받고 있는 조선 남자의 사진이 붙어있다.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교수

외식업체들이 만들어낸 용어
한식 강요하는 건 세계화의 덫
이벤트 탈피 진지한 연구 필요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2만9000원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비빔밥을 알리러 미국에 가는 시대다. ‘한식 세계화’ 바람은 거세지만 정작 그 음식이 언제부터 ‘한국 음식’이었냐 물으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지나친 음식 민족주의를 경계하며 지난 100년 동안 조선 사람이 먹어온 음식과 그 문화의 역사적 근원과 변천을 연구한 책이 나왔다.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의 <식탁 위의 한국사>다. 4일 오후 그를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에는 큼지막한 조선 남자 사진이 두 장 붙어 있다. 출입문 안쪽에 붙어 있는 사진 속 남자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개다리소반을 받아 앉아 국에 만 밥을 막 한 술 뜨고 있다. 책상 옆 벽에 붙은 사진은 ‘조선 요리옥’의 전성시대를 이끈 명월관을 1903년에 개업한 안순환(1871~1942)이다.

“명월관 주인이자 임금의 음식을 맡는 ‘전선사 장선’을 지낸 안순환이 막연히 여자일 거라 생각했죠. 조선유학회를 설립한 안순환은 또 다른 사람이라 여겼어요. 알고 보니 남자였고 둘은 같은 사람이었죠. 음식 연구를 하며 어떤 편견에 치우치지 말자는 학문적 반성의 의미로 사진을 걸어두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등의 옛 문헌과 역사 자료로 꽉 찬 그의 연구실이 풍기는 학구적 분위기와 달리 책 목차를 보면 친근하다 못해 군침이 넘어간다. 책에는 설렁탕, 추어탕, 육개장, 육회비빔밥, 냉면, 만두, 삼계탕, 김치, 신선로, 명란젓, 막걸리, 빈대떡, 김밥에 캘리포니아롤 이야기까지 나온다.

“‘음식 100년’이란 제목으로 반년 동안 신문에 칼럼을 썼는데 연재물을 그냥 모아 책으로 내자니 싫더라고요. 기왕에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아예 다시 썼죠.” 6개월 연재한 것을 그 세 배인 1년 반 동안 재집필하여 책으로 냈다. 따지고 보면 지난 10년의 연구 결과물인 셈이기도 하다. 한국의 음식 100년사를 짚어보는 게 목적이다.

주 교수는 100년을 섬세하게 구분했다. 그 열쇳말은 ‘개항’과 ‘식민지’, 그리고 ‘해방’과 ‘세계화’다. 개항 이후 어떤 방식으로 외래 음식이 유입됐는지, 가장 오래된 음식점인 국밥집부터 1880년대 개항 이후 조선의 도시에서 유행한 요리집인 조선요리옥, 해방 이후 술꾼들에게 인기를 끈 대폿집 등을 집중 분석했다. 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에 이루어진 ‘한국적인 것’의 부각과 농수산물·식품의 대량 생산 체제도 조명했다.

주석까지 571쪽에 이르는 책이 가장 중심에 두는 것은 문헌 근거다. “음식의 대가들을 중심으로 한 한식 연구에서 잘못 인용된 내용이 확인 절차 없이 계속 내려와 역사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원전을 뚜렷하게 밝혀 한국 음식 문화사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음식 관련 문헌과 사료만 1000여권을 소장하고 있고 1500권이 넘는 국내 고서도 살폈다.

오류나 편견은 이런 식이다. 조선시대 영조의 탕평책에서 ‘탕평채’란 음식이 생겨났다고?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이 내용을 주 교수는 문헌 분석으로 간단히 깨부순다. 1855년(철종 6년)에 간행된 <송남잡지>와 한양의 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1749년) 등을 인용해 탕평책 실시 이전부터 탕평채란 음식이 존재했음을 밝혔다. 옛 문헌 어디에도 먹는 이가 직접 비비도록 하는 비빔밥은 등장하지 않는다. 옛 문헌에는 가정식 비빔밥이 부엌에서 불 위에 올려 나물과 밥을 섞은 뒤 상에 내는 것이라 소개하고 있다. 현재처럼 고추장을 넣어 먹는 이가 비벼 먹는 방식의 비빔밥은 근대화 이후, 외식업체용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삼계탕’이란 단어도 고문헌에 없다. 양계장을 통해 대량으로 닭을 공급하고 인삼 재배가 자율화된 1960년대 이후 인삼을 강조해 장사를 하기 위해 ‘삼계탕’이란 말이 쓰였다.

그는 서강대 81학번으로 사학을 전공한 뒤 풀무원 김치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음식과 인연을 맺었다. 김치 연구로 문화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중국에 유학 가 소수민족 문화를 연구했다.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 <음식전쟁 문화전쟁>,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음식인문학> 등을 썼다.

“자기 것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비빔밥, 김치, <대장금> 등을 외국인들에게 강요하는 자세가 바로 세계화의 함정”이라는 그는 “이벤트 중심의 한식 세계화가 아닌 진지한 음식 인문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이 쓸 때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0장까지도 쓴다는 왕성한 학자는 당분간 계속해서 음식 문화사 연구를 해 책을 써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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