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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두 노동자와 함께 저무는 노동

등록 2013-09-08 20:12

노동계급은 없다
레그 테리오 지음, 박광호 엮음
실천문학사·1만4000원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육체노동자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그 직종에는 강력한 노조가 있다. 좋은 노동조건을 만들고 안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주역은 결국 그 일을 담당하는 노동자다. 강력한 노조는 강하고 전투적인 조합원들의 연합에서 나온 산물이다. 노동자가 먼저 있고 노조가 있다. 강력한 노조들이 근래에 퇴색해버린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째서 중요한 노동자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 지도부 탓이리라. (그들은 구성원인 노동자들을 위하기보다) 민주당을 집권 정당으로 만드는 일을 우선시했다. 또 다른 파열은 급격히 성장한 진보당이 성장보다 빠른 속도로 노동자들에게 버림받았던 것에 있다.”

미국 이야기다. 34년 동안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 은퇴한 레그 테리오가 2003년에 쓴 <노동계급은 없다>가 1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과실 품꾼(놉)으로 일하기 시작해 부두 노동자로 산 수십년의 육체노동기를 땀 냄새 진한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담았다. 그 배경이 오늘날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목이 여럿이다.

레그 테리오는 30대 중반이던 1959년 6월에 샌프란시스코항의 부두 노동자가 됐다. 그는 그 육체노동에 깊이 매료됐고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 항만노조) 활동에도 애정을 가졌다. 책은 부두에서 손으로 직접 짐을 부리고 나르던 노동자들의 작업 모습, 고된 일을 마친 뒤 들른 선술집에서 오가던 농담과 시비, 점차 기계화되어가는 부두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섰던 노조의 활약상 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과일 품꾼으로 미국 전역의 농가를 돌아다니며 일을 했던 부모를 따라 지은이도 일찌감치 일을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했으나 육체노동자의 길을 선택하고 중퇴했다. 열네 살부터 시작했던 노동의 나날을 끝낸 것은 산업재해였다. 선박 고정 작업을 하던 중 튕겨나온 쇠줄에 맞아 다리를 다쳤다. 이후 그는 노동에 대한 저술 활동에 몰입했다.

그는 부두 노동자들의 노조에도 매료됐다. 조합 활동은 없이 월 회비만 꼬박꼬박 빼내갔던 전미트럭운전사조합 산하의 지부, 노사가 너무 적대적이기만 했던 전기공노조 지부 등 기존에 겪어본 곳과 달랐다. 노조가 주류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제기능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지부 회의는 매월 열렸고 조합원 참석은 의무였다. 하원의원이 노조 회의에 참석해 노동 관련 법안에 관해 설명하곤 했다.

이제는 미국 부두의 풍경을 보며 지은이는 노동이 사라지는 현실을 개탄한다. “우리 삶에 필수적인 노동을 지키려면 노동이 하나의 권리로 간주되어야 하며 노동권도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는 또 무엇이 사라질까?”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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