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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픈 현실을 두고두고 기억시키는, 소설은 힘이 세다”

등록 2013-09-29 18:22수정 2013-09-30 20:45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왼쪽부터)와 중국 소설가 위화, 소설가 공지영씨가 2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왼쪽부터)와 중국 소설가 위화, 소설가 공지영씨가 2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중국 소설가 위화-공지영의 만남
사회: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백원담(이하 백) 위화 선생은 2000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들국화 전인권씨의 공연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맛보았다고 했다. 당시 위화 선생과 공지영 작가, 김정환 시인 등이 성공회대 주최로 ‘한·중 작가 5인담’에 참석한 인연도 있다. 위화 선생과 공 작가는 그 뒤에도 한국과 중국에서 열린 문학 행사 등에서 몇 차례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어제 공연을 본 소감부터 듣고 싶다.

위화(이하 위) 13년 전에 처음 들은 전인권의 노래는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사람한테서 이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 뒤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전인권씨는 감옥에 들어가 있거나 외국에 머물고 있어서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다. 13년 만에 그의 공연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전인권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공지영(이하 공) 전인권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들었다니 위화 선생의 마음속에도 분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전인권의 노래에서 슬픔을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하늘이 선택한 예술가는 고통을 받고 결국 혼자 남아 우주와 대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혼자서 우주와 대면하지 않으면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전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게 예술가의 당연한 숙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7일’ 출간한 위화

피상적으로만 알려진 사건들이
소설화됐을 때 다시 주목받아
‘역사서’의 구실도 한다고 생각

‘높고 푸른 사다리’ 쓴 공지영

위화 선생과 내 소설의 공통점은
가난하고 짓밟힌 자들을 보는
분노와 슬픔에서 비롯됐다는 점

위화 소설 <제7일>이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공지영씨는 <한겨레> 연재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탈고해서 다음달 출간을 앞두고 있다. 두 작품 다 기독교적 맥락 속에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제7일>의 앞머리에는 소설 제목인 ‘제7일’의 뜻을 설명하는 창세기 구절이 제사로 얹혀져 있다. <높고 푸른 사다리>는 젊은 가톨릭 수사를 주인공 삼아 신앙과 세속적 사랑 사이의 갈등, 기성 종교인들에 대한 비판 등을 담았다. 우선 <제7일>에 관해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 이 소설에서 좋은 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한 점이었다.

중국에서는 매일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황당한 일도 많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많은 사건들이 결국 죽음이라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집으로 오지만, 자신의 장례식이 예정된 식장으로부터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를 받는다. 이 가난한 주인공은 장례용 예복도 없어서 자신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어려 있는 흰 잠옷을 입고 간다. 그가 사후 세계에서 만나는 이들도 비슷하게 가난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이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죽은 사람을 주인공 겸 화자로 삼기로 한 것이다.

위화 선생의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가난하고 짓밟힌 이들에 대해 작가가 연민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내 소설 역시 한국 현대사에서 억울하게 짓밟히고 빼앗긴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와 슬픔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공통점이 우리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제7일>에 대해 중국의 어떤 평론가는 ‘소설에 묘사된 사건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며 비판적인 서평을 쓰기도 했다. 심지어는 작품이 경박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어떤가?

중국 사회는 매우 빠르고 복잡다단한 변화를 겪고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는 하지만, 소설과 문학에는 또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걸 소설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도가니>를 쓸 때의 상황이 그와 똑같았다. 현실에서는 재판도 끝나고 판결까지 내려져 있는 상황이라서 달리 어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으며, 그 결과 이른바 ‘도가니법’ 제정이라는 현실적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역시 소설의 힘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쓴다는 건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건을 피상적으로 지나치고 말지만, 소설 속에 그 사건을 기록해 놓으면 그것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역사 교수들이 역사책이 아닌 소설로 역사를 가르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소설은 그런 ‘역사서’로서의 의미 역시 지니는 것이다.

이번에는 <높고 푸른 사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소설은 가톨릭 신자인 공지영씨의 해박한 기독교 지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오늘의 기독교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 않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가톨릭 수사가 주인공인 만큼 그를 통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에 쓰인 ‘사다리’란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구원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땅 위에서 이루는 아름다운 삶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읽었다. 가령 흥남에서 탈출하는 피난민 1만4천명이 빅토리아 메러디스 호 안에서 이룬 이해와 사랑의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가 아닐까.

1만4천명의 피난민이 좁은 배 안에 짐짝처럼 부려진 채 흥남 부두를 출발해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오히려 몇명의 신생아가 추가된 상태에서 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 속에 천국이 있다는 걸 메러디스 호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소설에는 현실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는데, 그건 물론 근본적 애정에서 비롯된 비판이었다.

내용을 들어 보니 중국어로 번역할 때는 제목을 ‘천국의 사다리’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공지영 작가가 내 소설의 한국어판에 추천사를 써 준 만큼, 이 작품이 중국에서 번역 출간된다면 내가 꼭 추천사를 쓰고 싶다.

30일치로 마무리되는 <높고 푸른 사다리>의 마지막은 기다림으로 처리된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제7일>의 마지막 역시 가난했지만 순수한 사랑의 기억을 지닌 연인들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소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천천히 씹어 가며 읽게 되는 소설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나 역시, 가장 최근에 썼기 때문인지 내 소설 중에서 <제7일>이 가장 좋다.(웃음)

마지막으로 에스엔에스(SNS)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공 작가는 팔로어 63만을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언이고, 위화 선생 역시 중국의 트위터인 웨이보의 팔로어가 1400만명 이상으로 2010년에는 에스엔에스 영향력 1위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두 작가에게 에스엔에스란 어떤 의미인가?

작가로서나 시민으로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이나 알리고 싶은 일을 대중과 공유하는 수단이 내게는 트위터다. 트위터는 또 메모장의 역할도 대신 한다. 전에는 단상이 떠오르면 공책이나 메모지에 적어 놓고는 했는데, 그러다가 잃어버린 것도 많다. 지금은 그런 단상을 트위터에 올려놓으면 나중에 찾기도 쉽다.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독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지만, 나 스스로도 메모장 대신 웨이보를 활용한다. 종종 당에서 지워버린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웃음) 루쉰이 살아 있었다면 잡문 대신 웨이보에 짧은 글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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