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객주> 10권을 완간한 김주영은 “내가 가난하게 자랐고 배운 것도 많지 않은 사람이라서인지 나 같은 밑바닥 인생의 이야기를 문학의 주제로 삼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주영 대하소설 10권 완간
자료 샅샅이 찾고 현장답사
악전고투했지만 전개 힘들어
1984년 서울신문 연재 중단
옛 보부상길 보고 속개 자신
자료 샅샅이 찾고 현장답사
악전고투했지만 전개 힘들어
1984년 서울신문 연재 중단
옛 보부상길 보고 속개 자신
김주영(75)의 대하소설 <객주>가 1~9권 출간 30년 만에 마지막 10권이 나오면서 완간되었다.
1979년 6월1일 <서울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객주>는 1984년 2월29일까지 모두 1465회 연재되었으며 연재가 끝난 해 아홉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인 천봉삼을 원래 구상대로 죽게 하는 대신 살려둠으로써 여지를 남겨두었다. 결국 그로부터 30년 만인 올 4월 연재를 재개했고 5개월간의 연재를 거쳐 마지막 10권을 내놓았다.
<객주>는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한 사내 천봉삼을 중심으로 19세기 말 보부상들의 세계를 그린다. 송파 쇠살쭈 조성준, 들병이 출신 진령군 매월이, 백정의 딸로 어린 시절 청상이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천봉삼의 배필이 되는 월이, 금점꾼 출신으로 벼슬자리에 오른 이용익 등 실존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뒤섞여 지난 시절의 크고 작은 역사를 되살려낸다.
“문헌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보부상 이야기를 소설로 쓰자니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도 번역돼 있지 않은 시절이었죠. 지방에서 나온 향토지, 세시풍속도, 고서적에다 판소리 사설까지 참조할 만한 자료는 샅샅이 뒤져 보고 작품 배경이 되는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면서 악전고투 끝에 9권까지 쓰고는 더 이상은 나아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에 따라 일단 중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미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죠. 주인공 천봉삼을 처음 구상대로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은 언젠가 제대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4년 전 울진에 옛 보부상 길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걸 확인하고는 마지막 10권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더군요.”
2일 낮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객주> 10권을 속개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30년 만에 다시 만나는 <객주> 마지막 권은 거장의 농익은 필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런 식이다.
“일행은 밤마다 호랑이가 내려와 판자문을 긁는다는 빛내골 마방집에서 노루잠으로 눈을 붙이는 시늉만 하고 축시 말에 일어나 채비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귀들을 선머리에 세우고 발행한 지 한식경 남짓, 이마에 와닿을 듯 가파른 자드락길을 피가 짚신을 적시도록 걸음을 재촉하였다.”
울진 십이령길을 주요 무대로 삼은 마지막 10권은 소금 상단 행수 정한조와 봉화 내성(지금의 춘양) 임소의 반수 권재만 등 실존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금 상단의 활약상 그리고 천봉삼의 주도로 보부상들이 공동 소유의 땅을 사서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객주> 10권에는 앞선 1~9권까지 나왔던 인물 중에서 천봉삼과 월이 정도가 등장할 뿐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새로운 얼굴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10권은 독립된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정한조와 권재만은 ‘울진 내성행상불망비’라는 보부상 송덕비에 이름이 나오는 실존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중앙의 보부상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지방 상인들이었죠. 이들과 천봉삼을 연결시킴으로써 이들을 19세기 말 보부상을 중심으로 한 조선 상업 질서의 일부로 편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객주>는 장사치와 서민을 주인공 삼은 한국 최초의 역사소설로 평가받는다.
“월탄 박종화 선생과 유주현 선생 등의 역사소설은 거의가 왕조 중심의 궁중사를 다룬 것들입니다. 제가 1990년대 말에 북한을 보름 동안 방문했을 때 그곳 서점에 가 보니 북의 역사물들은 거의가 서민사더군요. 그쪽 정권 유지의 바탕을 이루는 게 무엇인지 깨달음이 왔습니다. 왕권 계승과 권문세가의 권력 다툼에 치우쳤던 기왕의 역사소설에서 봉놋방 구석으로 밀려났던 백성들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복원하고자 한 소설이 <객주>입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