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인 전북 김제에 조성된 아리랑문학마을을 찾은 작가 조정래가 4일 오후 하얼빈 역사와 만주 및 시베리아 이민자 가옥을 배경으로 소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하소설 ‘아리랑’ 작가 조정래씨
김제 아리랑문학마을 현장 찾아
“소설은 굳은 상처 파헤치는 것
젊은이에게 역사교육 마당 되길”
문학작품 테마파크론 국내 최대
김제 아리랑문학마을 현장 찾아
“소설은 굳은 상처 파헤치는 것
젊은이에게 역사교육 마당 되길”
문학작품 테마파크론 국내 최대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발원지인 전라북도 김제에 소설 속 주요 무대를 재현한 ‘아리랑문학마을’이 조성된 데 이어 4~6일 제1회 김제 아리랑축제가 열렸다.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에 지난해 10월 들어선 아리랑문학마을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역사와 지삼출·송수익·감골댁·손판석·차득보 등 소설 주인공들이 살던 내촌·외리마을, 만주와 시베리아의 이민자 가옥, 주재소·면사무소·우체국·정미소 같은 근대 수탈기관 그리고 홍보관으로 이루어졌다. 하얼빈 역사는 실물 60% 크기로 들어섰으며 주인공들이 살던 집과 마을도 소설 내용에 가깝게 재현되었다. 주재소와 정미소 같은 시설들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쓰던 물건들을 수집·배치해서 사실성을 높였다. 특히 해당 시설이 등장하는 소설 속 장면이 글과 그림으로 건물 내벽에 재현된 가운데 성우들이 녹음한 작품 내용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흡사 관람객들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리랑문학마을은 김제의 명물인 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 2003년 건립된 아리랑문학관이 작가의 육필원고와 필기도구, 취재수첩 등과 사진을 곁들인 소설 줄거리를 통해 창작 과정과 작품 흐름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면, 옥외에 들어선 아리랑문학마을은 방문객이 소설 배경 속으로 직접 들어가 봄으로써 입체적인 작품 이해가 가능하도록 꾸며졌다.
이곳 아리랑문학마을에서 4~6일 제1회 김제아리랑축제가 펼쳐졌다. 4일 오후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작가 조정래는 “소설의 역할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딱지로 굳은 역사의 상처를 다시 파헤쳐 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소설 무대를 재현해 놓은 아리랑문학마을이 젊은이들을 위한 역사 교육의 마당으로 구실을 하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막식에 이어 작가는 서울에서부터 버스로 함께 내려온 출판인 등 각계 인사들과 함께 문학마을을 둘러보았다. 구한말 이후 일본과 만주, 멕시코, 하와이, 중앙아시아 등으로 흩어진 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과 외리·내촌마을, 김제 본정통, 금광, 간척지 등 소설 <아리랑> 무대 기행 벨트 안내도 그리고 노래 ‘아리랑’에 관한 각종 책자 등이 전시된 홍보관에 이어 하얼빈 역사로 들어서자 소설 <아리랑>의 첫 장면을 표현한 이종구 화백의 그림 <만경평야 아리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넓고 푸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진 위로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 일제의 침탈이라는 암울한 민족사를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인천에서 내려온 이종구 화백도 이날 함께했다.
하얼빈 역사 안 로비와 복도에는 주요 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었고, 신문 연재 당시의 삽화와 노래 ‘아리랑’ 음반과 악보, ‘아리랑’ 성냥 등이 별도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홍보관과 하얼빈 역사 안 곳곳에는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소녀상과 강제 징용자, 돌진하는 독립군 등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 그리고 소설 <아리랑>의 주요 내용을 담은 대형 삽화들이 설치되어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작가는 “을사조약이 맺어지기 전인 1902, 3년부터 김제평야의 쌀이 일본에 수탈될 정도로 김제는 민족사의 아픔을 깊게 간직하고 있는 땅”이라며 “많은 분들이 아리랑문학마을을 찾아서 소설 <아리랑>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아픈 민족사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작가와 함께 문학마을을 둘러본 문학평론가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문학작품의 배경을 테마파크 형태로 만든 것으로는 아리랑문학마을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 것 같다”며 “허구적 이야기를 사실인 듯 재현한 점은 인상적인데, 소설 속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건물들이 배치되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다.
김제/글·사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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