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웅진주니어 제공
차이자오룬 글·그림, 심봉희 옮김
웅진주니어·1만1000원 책은 까맣다. 까만 세상에 하얀 아이 발만 두 개 떠 있다. “나는 보이지 않아요.” 한 발 앞이 낭떠러지일지 문턱일지 아이는 알지 못해 불안하다. “이제 집을 나설 거예요.” 익숙하지 않은 세상, 내딛는 발끝이 저릿저릿하다. 계단은 여덟개, 돌아서서 또 여덟개, 하나, 둘…. 철저히 아이의 심리 상태에 따라 진행되는 책은 갈수록 기괴한 이미지들로 채워져 간다. 나를 이상하게 힐끗거릴 것 같은 타인의 눈동자들, 다양한 크기의 소음들, 알 수 없는 방향, 찬 바람까지 앞 못 보는 아이의 머릿속에 이미지로 피어난다. “너무 무서워. 나 이제 그만할래.” 책장이 양옆으로 열리고 아이는 눈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푼다. 눈부신 총천연색 세상이다. 걸을 때마다 푹푹 발이 빠지던 곳은 놀이터 모래밭, 코끝을 간질이던 냄새는 꽃향기, 재잘재잘 소음은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 날 스치고 날아간 건 나비였구나. “보여요.” 아이의 감탄사에 방금 전 눈을 가린 채 “나는 두려워요”라고 말하던 모습이 겹친다. 볼 수 없는 친구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안타까움, 그리고 응원의 마음을 종이책의 강점을 살려 흑백과 컬러의 극적 대비로 표현했다. 대만 작가 차이자오룬이 그린 이 책은 대만 문화부 선정 ‘2013 베스트 그림책’,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선정 ‘대만의 가장 독창적인 아동 도서’ 등으로 선정됐다. 시각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날인 10월15일 ‘흰지팡이의 날’을 맞아 시각장애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안내서도 들어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웅진주니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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