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툰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처음으로 전시관을 마련하고 세계 출판시장 공략에 나섰다. 강풀의 ‘순정만화’로부터 시작해 포털사이트들의 적극적인 결합과 다양한 장르의 등장에 힘입어 지난 10년간 비약적 성장을 이룬 한국 웹툰, 그 어제와 오늘을 짚어본다.
10일 오전(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한국관. 사람들은 저마다 손바닥만한 태블릿피시(PC)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책 잔치’의 방문객들이 종이책이 아닌 태블릿피시로 보고 있는 것은 한국의 웹툰(온라인 만화, 웹과 카툰의 합성어)이다. 올해로 65회를 맞이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관엔 처음으로 웹툰 홍보관이 설치됐다. 이번 도서전은 한국 웹툰이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 먹힐 가능성이 있을지 가늠해보는 ‘시험대’인 셈이다.
방문객들은 손끝이 닿을 때마다 바뀌는 화려한 화면에 큰 관심을 보였다. 태블릿피시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도 단순히 만화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보는 스크롤 방식이 아닌 터치하는 순간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이 전환되고 효과음까지 나는 ‘진화한 웹툰’을 경험할 수 있었다. <노블레스> <신의 탑> 같은 판타지 만화부터 <닥터 프로스트> <미생> 같은 선 굵은 드라마, <파페포포>처럼 아기자기한 일상을 담은 ‘생활툰’까지 20여편이 영문으로 번역돼 세계 출판인들을 맞이했다.
그동안 해외 누리꾼들의 자발적 번역이나 해적판 출판 등을 통해 한국 웹툰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도 거짓은 아니었다. 이번 도서전에 온 김준구 네이버 웹툰사업부장은 “9일 한 벨기에 출판업자가 명함을 내미는데 거기에 한국 웹툰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너무 놀랐다. 유럽부터 아프리카까지 출판 상담 요청이 이어져 한국 웹툰 인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 ‘웹툰 한류’가 불 것인가.
한국 웹툰 10년, 비약적 성장
2002~2005년 사이 국내 포털사이트 야후, 다음, 파란, 네이트, 네이버 등이 앞다퉈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한국 웹툰은 얼추 10년이 됐다. 2004년부터 네이버 웹툰 서비스를 총괄해온 김준구 부장은 “네이버 웹툰의 경우 초창기에는 하루 이용자 수가 8000명, 연재물이 5개에 불과했는데 10년 만에 하루 이용자 수 700만명에 ‘도전 작품’을 뺀 고정 연재물만 150개 작품으로 늘어났다”며 “이는 시장이 몇 배 커졌다는 수준이 아닌 비약적 성장”이라고 말했다.
웹툰 서비스는 출판만화 시장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등장해 이제는 한국 만화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 초·중반 출판만화 시장 부흥기에 20여개에 달했던 만화 잡지가 2000년대 이후 시장 악화로 줄줄이 폐간했고, 때맞춰 등장한 웹툰이 무료라는 강점과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만화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지난 10년 사이 웹툰의 작가와 독자는 모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루 1000만명 이상의 독자가 웹툰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확산되자 ‘웹’뿐만 아니라 ‘앱’으로 만화를 즐기는 이들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끼>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인기를 끈 웹툰이 출판만화, 게임, 영화 등으로 이어져 엄청난 흥행을 이끄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올해 들어 해외에서 판권 계약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병맛’부터 판타지까지…다양한 매력
한국 웹툰의 장점은 ‘다양성’이다. 김낙호 만화평론가는 “웹툰은 내용의 다양성 측면에서 뚜렷하게 발전이 있었다”며 “독자들의 반응이 열렬하고 빠른 편이라 작품이 트렌드를 반영하는 방식 또한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웹툰 초창기를 견인했던 것은 ‘이야기의 힘’이 살아 있는 강풀 작가의 드라마였다. 다음에 연재한 강풀의 <순정만화>는 하루 200만 조회수 기록을 세우며 대중에게 ‘웹툰이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줬다. 이후 ‘병맛’, ‘엽기’ 등의 신조어 트렌드를 만들며 독특한 개그를 앞세운 조석의 <마음의 소리>,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등이 등장했고 <역전! 야매요리> <아이들은 즐겁다> 등 자신의 일상을 주제로 한 ‘생활툰’이 장르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대작으로 분류할 만한 판타지물이 잇따라 등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김준구 부장은 “판타지물까지 성공한다는 것은 시장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양한 작품은 ‘다양한 작가’로부터 나온다. 이전 잡지 만화 시대에는 만화가가 데뷔하기까지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했지만, 웹툰 시대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만화를 인터넷 공간에 올려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그중 돋보이면 작가가 될 수 있다. 만화전문출판사 거북이북스 강인선 대표는 “무명작가라도 ‘도전! 만화’와 같은 코너에 작품을 올렸다가 인기만 있으면 연재가 가능하니까 데뷔가 쉬워졌고, 동시에 작가 지망생들이 많아져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자유게시판 형식인 네이버 ‘도전! 만화’의 경우 12만명의 작가 지망생이 매달 8만편 넘는 웹툰을 게재한다. 이 중 정식 작가로 데뷔할 확률은 0.03% 정도다.
‘도전! 만화’ 코너를 통해 등단해 큰 인기를 얻어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도 참가한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32) 작가는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한 뒤 데뷔가 쉽지 않아 절망하다가 내 작품을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자 웹툰을 올렸는데 인기를 끌어 정식 연재를 하게 됐다”며 “웹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데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독자들이 존재해 데뷔도 쉬워지고 대중들의 생생한 반응도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보 기술, 웹툰 강국의 과제
웹툰의 발전은 2008년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수 1500만명 돌파, 2011년 스마트폰 이용자수 1000만명 돌파 등 우리나라 정보 기술 발전 속도와 궤를 같이한다. 인터넷 정보 유통망을 꽉 쥐고 있는 대형 포털사이트가 대대적인 웹툰 서비스를 통해 개발한 ‘플랫폼’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물론 대형 포털의 콘텐츠 장악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 웹툰의 성장에 포털의 서비스가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화 강대국 일본은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웹툰 플랫폼 구축이 늦어지면서 웹툰 시장에선 후발 주자가 됐다.
세계최고 IT 인프라망 힘입어
한국 만화 주류로 자리잡아
다양한 내용에 작가층 두터워
스마트폰 타고 이젠 웹툰까지
전통 만화강국 일본도 따돌려 인기작은 게임·영화 흥행몰이
해외선 ‘판권 계약’ 요청 쇄도 최근 케이티(KT)경제경영연구소가 낸 ‘웹툰 플랫폼의 진화와 한국 웹툰의 미래’ 보고서를 보면 웹툰을 “플랫폼으로의 고객 유입과 체류에 있어 최적의 킬러 콘텐츠”라고 평가한다. 올해 들어 케이티와 에스케이텔레콤(SKT) 등 이동통신사들까지 웹툰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네이버는 ‘미리 보기’를 통해 웹툰을 유료화하는 실험을 진행중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플랫폼으로서의 웹툰에 주목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학과 교수는 “단순히 외국에서 인기 끌 만한 작품 몇 개를 판다는 수준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인 웹툰의 방식을 살리는 방식으로 수출하는 것이 진정한 해외 진출”이라며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외국에 웹툰 플랫폼을 구축해 우리의 웹툰을 유통시키고 그 나라 웹툰 작가들도 양성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10일 오전(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웹툰 홍보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한국 웹툰 홍보영상을 보고 있다. 네이버 제공
한국 만화 주류로 자리잡아
다양한 내용에 작가층 두터워
스마트폰 타고 이젠 웹툰까지
전통 만화강국 일본도 따돌려 인기작은 게임·영화 흥행몰이
해외선 ‘판권 계약’ 요청 쇄도 최근 케이티(KT)경제경영연구소가 낸 ‘웹툰 플랫폼의 진화와 한국 웹툰의 미래’ 보고서를 보면 웹툰을 “플랫폼으로의 고객 유입과 체류에 있어 최적의 킬러 콘텐츠”라고 평가한다. 올해 들어 케이티와 에스케이텔레콤(SKT) 등 이동통신사들까지 웹툰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네이버는 ‘미리 보기’를 통해 웹툰을 유료화하는 실험을 진행중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플랫폼으로서의 웹툰에 주목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학과 교수는 “단순히 외국에서 인기 끌 만한 작품 몇 개를 판다는 수준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인 웹툰의 방식을 살리는 방식으로 수출하는 것이 진정한 해외 진출”이라며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외국에 웹툰 플랫폼을 구축해 우리의 웹툰을 유통시키고 그 나라 웹툰 작가들도 양성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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