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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의 노동이 왜 ‘특수’합니까

등록 2013-11-03 19:54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이병훈 외 4명 지음
창비·1만5000원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회사에 소속돼 있는 식구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개인사업자고 회사의 인프라를 빌려 쓰는 것뿐이라고 생각을 해서, 언제든지 싫으면 그만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지점 운영은 우리가 일을 해야 유지가 되니까 그럴 때는 소장을 달달 볶아서 우리를 닦달하게 만들어요. 목표량을 채우라는 거지요.”(50대 보험설계사 이정희씨)

“퀵서비스라는 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거라서, 거의 다람쥐 쳇바퀴라고 봐야 해요. 보통 샐러리맨들은 일주일에 며칠 힘들게 일하면 하루는 좀 여유있게 보내고 그런 게 되는데, 우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이 월요일이야. 별로 특수하지도 않은데 특수고용노동자라고 해놔서 하루라도 품을 안 팔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거니까요. 주말이라고 해도 제대로 쉬지도 못해요.”(40대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특수’라는 말이 붙기 어색한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퀵서비스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기사, 요구르트 판매원, 방송 구성작가, 헤어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갖고 사는 우리 이웃, 너무나도 평범한 서민들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들을 ‘특수고용노동자’라 부른다. 이 이름 때문에 이들은 자영업자로도, 노동자로도 대우받지 못한 채 회색지대에서 살고 있다.

‘특정한 사업주에게 자신의 노무를 직접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그 보수로 생활하고 있는’ 노동자이지만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자신의 재량에 따라 수입을 올린다’는 면에서 특수하다는 논리다. 이런 특수고용노동자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양산, 업무의 외주화 등 고용의 질이 나빠지면서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 강은애 박사(사회학),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책을 냈다. 2010년 2월부터 1년 반 동안 20대 헤어디자이너, 30대 구성작가, 40대 학습지 교사·화물트레일러 기사·퀵서비스 기사, 50대 보험설계사·요구르트 판매원·채권추심원·대리운전 기사·경기보조원, 60대 간병인 등 모두 11개 직종 11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휴일 자진 반납이나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다치거나 아파도,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제대로 된 식사 공간, 휴식 공간도 없이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감내해야 한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들에 대한 계약 존속 보호, 노동 3권 보장, 사회보험제도 적용 등을 노동부와 국회에 권고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미 독일,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이들을 위한 별도의 노동법을 제정해 근로기준과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성’을 둘러싼 복잡한 논란만 계속되는 사이 수많은 ‘평범한 이웃’들은 ‘특수’라는 이름에 갇혀 힘들고 부당한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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