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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중섭과 이남덕, 시대의 질곡에 맞선 사랑

등록 2013-11-10 19:41

최문희의 소설 <이중섭>은 이중섭과 이남덕의 시대의 질곡에 맞선 사랑을 그린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문희의 소설 <이중섭>은 이중섭과 이남덕의 시대의 질곡에 맞선 사랑을 그린다. <한겨레> 자료사진
원로 작가 최문희의 신작소설
일 유학시절부터 생 마감까지
굴곡 많은 두 사람의 사랑 담아
동료 화가 등 실명으로 등장

이중섭 1, 2
최문희 지음
다산책방·각 1만3000원

2012년 11월1일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아래 초가 마당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이중섭(1916~1956)이 쓰던 팔레트를 그의 일본인 부인 이남덕이 서귀포시에 기증하는 자리였다. 이중섭과 이남덕 부부는 전쟁 중이던 1951년부터 1년 정도 이 초가의 단칸방에서 두 아들과 함께 지낸 바 있다. 이날 기증돼 이중섭미술관에 전시된 팔레트는 이중섭이 1941년 일본 미술창작가협회의 태양상을 수상할 때 부상으로 받은 것.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중섭은 1943년 원산으로 귀국하면서 이남덕에게 징표 삼아 이 팔레트를 맡겼다.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을 담은 책이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이중섭과 이남덕의 사랑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 출간되었다. 원로 작가 최문희(78·사진)의 두 권짜리 소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이중섭과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의 만남에서부터 1956년 마흔의 나이로 이중섭이 숨을 거두기까지 국경을 넘어 오간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남겨둔 팔레트가 그녀에게는 사랑의 무거움이었다. 그녀에게 떠안겨줬던 두 아이에 대한 양육과 교육과 생을 관리하게 만들었던 버팀목이었다. 그가 무심하게 보관을 부탁했던 팔레트가 그녀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 이중섭이라는 남자의 영혼의 일부가 전이된 건 사실이었다. 자신의 여자임을, 불멸의 사랑을 기약했던 물건이었다.”

이중섭의 일본인 부인 이남덕씨가 2012년 11월1일 이중섭이 생전에 쓰던 팔레트를 서귀포시에 기증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 다산책방 제공
이중섭의 일본인 부인 이남덕씨가 2012년 11월1일 이중섭이 생전에 쓰던 팔레트를 서귀포시에 기증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 다산책방 제공

소설은 이중섭과 이남덕의 시점을 교차시키면서,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둘의 사랑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 순간들을 되살려낸다. 일본 문화학원에서 촉망받는 화가로 떠오르던 청년 이중섭과 학교 2년 후배로 그를 연모한 부잣집 딸 마사코의 풋풋한 출발, 피식민지 출신 예술가로서 식민 지배국 여성을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고뇌와 갈등, 수용소에 머무는 가족을 팽개쳐 둔 채 그림 판 돈으로 동료 화가들에게 술이나 사 주며 흥청거렸던 부산 피난 시절, 견디다 못해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떠나는 남덕과 중섭의 쓰라린 이별, 마지막 순간 지아비가 정신병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음에도 그를 만나러 현해탄을 건너지 못한 남덕의 회한까지…. “생존이라는 족쇄가 뼛속까지 갉작거렸던 차갑고 무기력한 시대의 혼란” 속에 힘든 사랑을 이어가야 했던 남녀의 처지에 작가는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식민지 국민의 분노와 굴욕을 소의 눈망울로 대항했던 대향(=이중섭)이었다. 하지만 그의 젊음을 불살랐던 그 지고한 소의 순교가 야마모토 마사코, 그녀와의 결혼으로 그의 투철한 민족의식에 구정물을 끼얹었다는 사실도 그는 모르지 않았다.”

예술가 남녀의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식민 지배국과 피지배국 출신이라는 외적 요건이 진한 그림자를 드리운 관계였다. 여기에다가 전쟁과 피난, 경제적 궁핍이라는 시대의 질곡이 훼방꾼으로 끼어들었다. 부산 초량부두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현해탄 건너로 떠나보내는 순간 이중섭의 인생에는 메울 수 없는 심연이 파였다. 중섭에게 심연이 있었다면 남덕에게는 마음의 오지가 있었다.

“그의 군동화에서 상징하는 끈의 이미지가 관계의 소통이라고 했지만, 그와 두 아이와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캄캄한 오지를 그가 한번이라도 들여다봐준 적이 있었던가.”

“그는 구 시인이라는 인연에 속해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정도로 한결같이 이중섭을 챙기고 보살폈던 시인 구상을 비롯해 김환기 한묵 박생광 유강렬 등 동료 화가들과 시인 박인환 등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이중섭의 재능을 흠모하고 질투한 나머지 그의 삶의 주요 국면마다 악역을 담당했던 허수라는 허구적 인물은 소설에 또다른 긴장과 재미를 부여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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