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의 쌍생아’로 바라본 일베
일베의 사상
박가분 지음
오월의봄·1만3000원 하위문화의 배출구쯤으로 치부되던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도 ‘사상’이 있다.’ 몇 달 동안 일베에 상주하며 ‘일베의 사상’을 추적했다는 ‘청년 논객’ 박가분씨가 이 책을 쓴 전제다. 그는 “일베가 만들어낸 신조어와 유머 코드가 연예인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일베의 사상을 내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말하는 ‘일베의 사상’이란 무엇일까? 지은이는 이를 “나는 누군가의 정체성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로 압축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일베가 성별·지역·정치적 지향 등에 대해 혐오 가득한 편견을 제한 없이 표출하고, 회원들끼리 ‘묘한 해방감’을 공유하면서 정치·문화적 해방구로 기능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지은이의 분석이다. 지은이는 또 민주주의 금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베를 ‘촛불시위의 쌍생아’라고 주장한다. 그는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시위가 “현실의 국가권력을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심판한다는 것이었지만, 거기서부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이 자립했다”며 일베도 이 공식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시민들이 ‘국가’에 의탁하지 않고, 희망하는 사회에 대해 소통하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일베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히말라야 스님’ 청전의 맑은 속삭임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
청전 지음
휴·1만3000원 청전 스님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교사가 되려 교육대학에 다니다가 가톨릭 신부가 되어 대건신학대를 다녔다. 공부 중 의문이 생겨 이를 해결하고자 송광사로 구산 스님을 만나러 갔다가 불교에 출가했다. 법정 스님이 아낀 후배였던 그는 소설 <우담바라>의 실제 모델이었을 만큼 난행고행을 많이 했다. 그러나 수행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그는 진정한 스승을 떠나 동남아를 거쳐 인도에 간다. 다시 히말라야로 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그는 “성적 욕망이 있느냐”고 물었고, 달라이 라마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그러면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묻자, “수행자인 만큼 간절한 기도로 위기를 넘기곤 한다”고 답했다. ‘한 생각을 놓아라’는 한국 선승들의 말과는 달리 너무도 진솔한 답에 그는 달라이 라마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다. 그 뒤 26년째 한자리에서 수행하고 히말라야 오지 마을 사람들에게 의약품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유명 산악인보다도 히말라야의 속살을 깊게 알며, 그곳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청전 스님의 이야기는 불교도 교리도 가르침도 없다. 그의 종교란 불교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이란 고백대로 그들과 나눈 영혼의 속삭임이다. 맑은 영혼의 땅, 히말라야에서 청전 스님이 말한다. “바쁜 걸음 멈춰 세운 그대여, 행복하여라.”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면허 있어야 결혼 가능한 미래 한국
결혼면허
조두진 지음
예담·1만3000원 결혼이 하고 싶다면 면허를 따라! 소설 <도모유키>로 2005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조두진씨가 새 장편을 내놓았다. 2016년 가상의 한국에선 번듯한 젊은이로 결혼 자격을 갖추려면 결혼면허증은 필수다. 1년 과정의 결혼생활학교에서 384시간의 강좌를 이수해야만 비로소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긴다. 출석률은 95%를 넘겨야 하며 70점 합격점을 얻지 못하면 탈락. 4시간의 주관식 필기시험과 요리, 청소, 원예가 포함된 실기시험을 통과하기란 만만치 않다. 또 결혼 10년마다 행복지수를 판단해 행복세를 징수한다. 소위 결혼적령기의 스물여덟 여주인공 인선은 남자친구 윤철과의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엠엘(ML)결혼생활학교에 입학한다. 신입사원 윤철은 교제 1년이 되어가지만 늘 ‘홍대 앞 그 집에서 만나, 그 모텔로 가는’ 연애를 반복하며 결혼에는 밋밋하기만 한데….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알고 살아가던 인선은 교과 과정을 통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혼생활을 알게 되고, 윤철을 통해 연애와 결혼의 차이를 발견하며 변화해 나간다. 작가는 “결혼을 관성처럼 하다니 말이나 되느냐”고 묻는다. 졸업하면 직장을 구하고, 사랑하면 결혼하고, 결혼만 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 믿는 막연한 기대에 일침을 가한다. 이혼이 결혼의 3분의 1 수준이 된 현실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는 면허가 있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능청스러운 상상력이 흥미롭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추사 김정희는 편집디자이너였다
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지음
컬처그라퍼·1만5000원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지은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한다. 그가 보기에 추사 김정희는 정교하게 짜인 비례와 균형감을 갖춘 ‘편집디자이너’였다. 안동 김씨 세도에 밀려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추사가 토해낸 <세한도>는 중국 문인들의 ‘댓글’이 붙어 전체 길이가 13.9m에 이른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배치, 그림과 편지와 여백이 차지하는 각각의 공간을 따져보니, 그 기하학적 배치가 선명하다. 추사의 천재적 예술성을 서양의 비례 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다면서도 “추사는 본능적으로 편집의 원리와 효과에 대해 안목이 있었다”고 살을 붙인다. 오래된 것과 가까운 것을 종횡무진 오가는 지은이의 오지랖은 깊이와 재기를 모두 갖췄다. 이런 식이다. 구석기인의 주먹도끼와 정교하게 연마한 110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그 본질에서 “어차피 단단한 자연석을 가공한 돌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주먹도끼의 디자인이, 기능에 충실한 모더니즘을 선취했다며 “오래된 모던”이라고 명명한다. 호랑이 새끼를 닮아 ‘호자’라고 이름 붙은 백제시대 남성용 요강을 두고는 “이놈의 아가리에 대고 오줌을 누면 호랑이가 느끼는 모멸감이야 오죽할까”라며 웃는다. 변기를 예술로 만든 마르셀 뒤샹과 호자를 비교할 때 ‘삶의 디자인을 읽다’라는 책의 부제를 이해하게 된다. 어몽룡의 <월매도>를 망쳐놓은 5만원권 지폐의 디자인이 딱 5만원짜리라는 지적도 알고 보니 와닿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박가분 지음
오월의봄·1만3000원 하위문화의 배출구쯤으로 치부되던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도 ‘사상’이 있다.’ 몇 달 동안 일베에 상주하며 ‘일베의 사상’을 추적했다는 ‘청년 논객’ 박가분씨가 이 책을 쓴 전제다. 그는 “일베가 만들어낸 신조어와 유머 코드가 연예인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일베의 사상을 내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말하는 ‘일베의 사상’이란 무엇일까? 지은이는 이를 “나는 누군가의 정체성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로 압축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일베가 성별·지역·정치적 지향 등에 대해 혐오 가득한 편견을 제한 없이 표출하고, 회원들끼리 ‘묘한 해방감’을 공유하면서 정치·문화적 해방구로 기능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지은이의 분석이다. 지은이는 또 민주주의 금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베를 ‘촛불시위의 쌍생아’라고 주장한다. 그는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시위가 “현실의 국가권력을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심판한다는 것이었지만, 거기서부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이 자립했다”며 일베도 이 공식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시민들이 ‘국가’에 의탁하지 않고, 희망하는 사회에 대해 소통하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일베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청전 지음
휴·1만3000원 청전 스님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교사가 되려 교육대학에 다니다가 가톨릭 신부가 되어 대건신학대를 다녔다. 공부 중 의문이 생겨 이를 해결하고자 송광사로 구산 스님을 만나러 갔다가 불교에 출가했다. 법정 스님이 아낀 후배였던 그는 소설 <우담바라>의 실제 모델이었을 만큼 난행고행을 많이 했다. 그러나 수행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그는 진정한 스승을 떠나 동남아를 거쳐 인도에 간다. 다시 히말라야로 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그는 “성적 욕망이 있느냐”고 물었고, 달라이 라마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그러면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묻자, “수행자인 만큼 간절한 기도로 위기를 넘기곤 한다”고 답했다. ‘한 생각을 놓아라’는 한국 선승들의 말과는 달리 너무도 진솔한 답에 그는 달라이 라마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다. 그 뒤 26년째 한자리에서 수행하고 히말라야 오지 마을 사람들에게 의약품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유명 산악인보다도 히말라야의 속살을 깊게 알며, 그곳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청전 스님의 이야기는 불교도 교리도 가르침도 없다. 그의 종교란 불교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이란 고백대로 그들과 나눈 영혼의 속삭임이다. 맑은 영혼의 땅, 히말라야에서 청전 스님이 말한다. “바쁜 걸음 멈춰 세운 그대여, 행복하여라.”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조두진 지음
예담·1만3000원 결혼이 하고 싶다면 면허를 따라! 소설 <도모유키>로 2005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조두진씨가 새 장편을 내놓았다. 2016년 가상의 한국에선 번듯한 젊은이로 결혼 자격을 갖추려면 결혼면허증은 필수다. 1년 과정의 결혼생활학교에서 384시간의 강좌를 이수해야만 비로소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긴다. 출석률은 95%를 넘겨야 하며 70점 합격점을 얻지 못하면 탈락. 4시간의 주관식 필기시험과 요리, 청소, 원예가 포함된 실기시험을 통과하기란 만만치 않다. 또 결혼 10년마다 행복지수를 판단해 행복세를 징수한다. 소위 결혼적령기의 스물여덟 여주인공 인선은 남자친구 윤철과의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엠엘(ML)결혼생활학교에 입학한다. 신입사원 윤철은 교제 1년이 되어가지만 늘 ‘홍대 앞 그 집에서 만나, 그 모텔로 가는’ 연애를 반복하며 결혼에는 밋밋하기만 한데….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알고 살아가던 인선은 교과 과정을 통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혼생활을 알게 되고, 윤철을 통해 연애와 결혼의 차이를 발견하며 변화해 나간다. 작가는 “결혼을 관성처럼 하다니 말이나 되느냐”고 묻는다. 졸업하면 직장을 구하고, 사랑하면 결혼하고, 결혼만 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 믿는 막연한 기대에 일침을 가한다. 이혼이 결혼의 3분의 1 수준이 된 현실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는 면허가 있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능청스러운 상상력이 흥미롭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박현택 지음
컬처그라퍼·1만5000원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지은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한다. 그가 보기에 추사 김정희는 정교하게 짜인 비례와 균형감을 갖춘 ‘편집디자이너’였다. 안동 김씨 세도에 밀려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추사가 토해낸 <세한도>는 중국 문인들의 ‘댓글’이 붙어 전체 길이가 13.9m에 이른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배치, 그림과 편지와 여백이 차지하는 각각의 공간을 따져보니, 그 기하학적 배치가 선명하다. 추사의 천재적 예술성을 서양의 비례 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다면서도 “추사는 본능적으로 편집의 원리와 효과에 대해 안목이 있었다”고 살을 붙인다. 오래된 것과 가까운 것을 종횡무진 오가는 지은이의 오지랖은 깊이와 재기를 모두 갖췄다. 이런 식이다. 구석기인의 주먹도끼와 정교하게 연마한 110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그 본질에서 “어차피 단단한 자연석을 가공한 돌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주먹도끼의 디자인이, 기능에 충실한 모더니즘을 선취했다며 “오래된 모던”이라고 명명한다. 호랑이 새끼를 닮아 ‘호자’라고 이름 붙은 백제시대 남성용 요강을 두고는 “이놈의 아가리에 대고 오줌을 누면 호랑이가 느끼는 모멸감이야 오죽할까”라며 웃는다. 변기를 예술로 만든 마르셀 뒤샹과 호자를 비교할 때 ‘삶의 디자인을 읽다’라는 책의 부제를 이해하게 된다. 어몽룡의 <월매도>를 망쳐놓은 5만원권 지폐의 디자인이 딱 5만원짜리라는 지적도 알고 보니 와닿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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