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공격 명령 거부하는 장난감 병사들

등록 2013-12-08 20:01

그림 재미마주 제공
그림 재미마주 제공
그림책 작가 벤자민 파커 작품
유럽 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

위풍당당 꼬마 장군
벤자민 파커 글·그림, 김영숙 옮김
재미마주·1만1000원

그냥 장군도 아니고 ‘왕장군’이었던 삼촌을 떠올리며 꼬마는 장난감 상자 속 ‘가장 똑똑하고 용감한 병사들’을 소집했다. 이러한 첫 설정부터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책장을 넘기면 점점 더 재밌고, 동시에 심오한 의미가 담긴 상황으로 흘러간다. “모든 장난감들을 정복하라! 나는 왕장군이 될 것이다!” 꼬마의 목소리는 진지하고 단호했다. 장난감 병사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첫번째 목표로 지목된 곰돌이. 곰돌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 포위돼 곧바로 항복을 했다. 병사들은 수군댔다. “알고 보면 곰돌인 착한데…. 왜 곰돌이를 공격하지?” 이어지는 공격에서도 병사들의 의문만 쌓여갔다. 알파벳 블록을 무너뜨리고는 “저 블록들이 우리한테 알파벳을 가르쳐 줬는데 왜 공격하는 거죠?”, 모래성을 부수고는 “저기서 옛날에 행복한 휴가를 보냈는데…”라며 슬퍼했다.

병사들의 이탈이 시작됐다. 결국 “돌격!” 하고 꼬마가 소리쳤을 때 뒤를 보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린 공격하기 싫어요!” 한 용감한 병사가 소리쳤다. “모든 장난감들을 정복하고 나면, 어떤 장난감이 우리랑 같이 놀아줄 수 있죠? 다 같이 놀 수 있는 놀이를 찾아줘요!”

꼬마는 다른 놀이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결말은 병사들이 보기에 “헉!”이다. 개성있고 감각적인 어린이책을 내온 재미마주 출판사가 영국의 그림책 작가인 벤자민 파커의 작품을 지난해 <하늘을 나는 마지막 돼지>에 이어 또 한 번 펴냈다. 유럽의 전통 설화에 바탕을 둔 이 이야기는 예술적인 느낌의 일러스트를 통해 어른과 아이가 모두 볼만한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저 멋진 삼촌처럼 되려고 순진한 얼굴로 공격 명령을 내리는 꼬마, 명령에 따르며 속상해하는 장난감 병사들의 모습은 생각을 깊게 할수록 참담하게 다가온다. 현실에서도 “싫어요”를 외치는 용기까지 내보였건만 기어이 “헉”소리 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책은 쉽게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책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싫은 것을 싫다고, 속상한 것을 속상하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이 지점을 명확히 간파할 것이라 믿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재미마주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