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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성수 ‘친일’은 능동적 행위였다”

등록 2005-09-02 17:53수정 2005-09-02 18:08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는 일제 시기 ‘조선인 산업 자본가’를 대표한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에 서 있는 김성수 동상.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는 일제 시기 ‘조선인 산업 자본가’를 대표한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에 서 있는 김성수 동상.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성렬 교수 ‘사회…’ 서 주장
산업 자본가 세력들
전체주의 색채 드러내며
사회 패권성 노골화

“인민재판 형식으로 인촌 김성수 선생을 친일파로 몰고 있다.” 지난 1일 새로 취임한 현승종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가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뚫고 3·1운동의 산실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 민족기업을 만들려고 애썼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승렬 연세대 연구교수(한국사)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사회사학회가 펴내는 <사회와 역사> 최근호에서 이 교수는 일제 시기 이른바 ‘민족자본가’의 현실 인식에 대해 분석했다.

 그동안 민족자본가 그룹의 ‘개량주의적’ 속성에 대한 분석은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적어도 역사학계에선 김성수를 비롯한 유력 조선인 자본가들의 친일 행위 자체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교수는 조선인 자본가들의 ‘전체주의적 경향’에 주목했다. “(조선인) 자본가들의 친일 행위는 전체주의적·국가주의적 경향이라는 내재적 근거 위에서 진행된 능동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일제 대륙침략 이후에는
이익위해 침략전쟁 동조

이 교수는 일제 시기 조선인 산업 자본가의 상징적 인물로 김성수를 꼽았다. 호남 대지주 가문 출신의 김성수는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1919년 경성방직을 창립했으며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했다. 이를 통해 그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자본주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세력의 핵으로 부상”했다. 특히 김성수는 “경제적 엘리트에 안주한 전통적인 지주나 상인 자본가들과 달리 정치·사회·문화 영역까지 지배하려” 했다는 점에서 “친일적 상업·금융 자본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조선일보> 세력”과도 분명히 구분된다. 이 교수는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산업 자본가 세력이 “정치 주체로서 (조선) 사회에 대한 패권성을 노골화시킨 것은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의 획기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인재양성과 민족기업이라는 ‘민족 자본가 마인드’는 이후 민족이 아닌 자본의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이 교수는 김성수를 위시한 <동아일보> 그룹이 자신들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사례로 꼽는 물산장려운동을 우선 분석했다. 조선의 토속산물을 사용하자는 이 운동으로 외국산보다 조선산 물품의 값이 급등했고, 일반 민중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반면 그 결과 발생한 조선인 자본가들의 이익은 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다. 물산장려운동이 불과 6개월을 넘기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교수는 “<동아일보>를 포함해 물산장려운동 주도 세력이 내걸었던 민족경제 자립은 ‘성장주의’의 함정에 빠져 전체 민족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내할 것을 민중에게 요구한 것”이며 “이는 민족주의를 매개로 전체주의적 국가주의 색채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인 자본가들의 이런 현실인식은 일제의 대륙침략 이후에 재현된다. “조선인 대자본가들은 만주 시장 진출을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이 가져온 경제적 이익을 나눠갖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일본과 조선은 같은 동족이라는 ‘내선일체론’은 조선인 자본가들이 반긴 이론적 근거였다. “‘민족’을 (일본·황국이라는) ‘국가’로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자본주의적 생산력 증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던 이들은 이제 “한손으로는 신경제·공익·도덕·국민재조직 등 전체주의 정신을 고취하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자유주의·민주주의라는 해방적 의미의 근대적 가치를 부정”했고, “파시즘 체제를 자발적으로 수용·실천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그 결과 “한때 조선 사회의 주체로 등장했던” 조선인 자본가들은 일제 말기에 이르러 “‘지배할 권리’와 ‘돈 벌 권리’를 맞바꿨다.”

이 교수는 이들이 “반민족 행위 이전에, 개인의 가치를 발견한 근대에 도전하면서 침략전쟁에 동조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민족 자본가 대신에 ‘조선인 자본가’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 이 교수는 이들의 전체주의적 성향이 일제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적극 동의했던 것이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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