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꽃선비의 연인들>(닻별 지음, 감 펴냄)
지난해 마지막 주간 책 판매 동향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12월 넷째 주 온라인서점 예스24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로맨스 소설 <북촌 꽃선비의 연인들>(닻별 지음, 감 펴냄·아래 사진)이 해당 분야 1위를 꿰찬 것이다. 구매자는 여성이 92.9%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30대(42.6%), 40대(32.3%) 여성들이 많이 찾았다.
이 소설은 2013년 1월부터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오른쪽 사진) 중 누구나 자기 소설을 올릴 수 있는 ‘챌린지 리그’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최세라 예스24 도서팀장은 “웹소설 연재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연재의 인기가 자연스럽게 전자책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이런 책들의 인기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점에서도 출간 즉시 단독 할인혜택 같은 마케팅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신인 작가가 어떤 등단 과정도 거치지 않고 ‘챌린지 리그’만을 통해 전자책 시장 1위에 오르는 일도 가능해진 것이다. 이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웹상에서 읽는 웹소설 출신 장르 소설이 전자책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이다. 하나의 콘텐츠가 플랫폼을 바꿔가며 인기를 끌고 있는 셈이다.
출판계는 로맨스, 추리물 등 장르 소설을 중심으로 웹소설 정식 연재물은 물론 신인들의 ‘챌린지 리그’까지 주목하고 있다. 10년 넘게 로맨스 소설을 내오다가 지난해 ‘감’이라는 로맨스 소설 브랜드를 내놓고 <북촌 꽃선비…>를 펴낸 반디출판사의 김정희 영업부장은 “로맨스 소설 출판사들이 최근 유심히 지켜보는 공간이 포털 웹소설 연재물과 챌린지 리그”라며 “대중의 반응을 미리 알 수 있고 그 인기가 책의 인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기존 작가들에게도 ‘챌린지 리그’에 소설 연재를 하도록 유도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북촌 꽃선비…>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닻별’이란 필명의 대학생 작가가 네이버 ‘챌린지 리그’에 올린 소설로 정식 연재는 하지 않았다. 원고료가 지급되는 정식 연재를 하려면 네이버 운영진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인기는 뜨거웠다. 연재 당시 실시간 순위 1위를 기록했고 평균 별점이 9.9점, 12월31일 기준으로 누적 조회수 135만을 넘겼다. 지난여름 종이책이 출간된 뒤에는 3회까지만 남기고 연재물이 삭제된 상태다.
네이버 웹소설은 1년 만에 이미 자체 수익 구조도 구축한 상태다. 연재중인 웹소설의 ‘미리보기’(정해진 연재 요일보다 앞당겨 연재물을 보는 것)와 ‘완결보기’ 서비스를 유료화해 유료 콘텐츠 시장의 가능성을 열었다. 네이버 ‘이(e)북스토어’의 집계를 보면 1월3일 현재 장르 소설 분야 판매 상위권은 모두 웹소설 연재물의 미리보기 서비스가 휩쓸고 있다. 1년 동안 웹소설에 정식 연재를 한 74개 작품 중 <광해의 연인> 등 9개 작품 16권이 종이·전자책으로 출판됐다. 이달에도 누적 조회수 600만건을 기록한 <이매망량애정사> 등 5~6개 작품이 출간될 예정이다. ‘챌린지 리그’ 출신으로는 <북촌 꽃선비…> 외에도 <조선왕비간택사건>, <늑대 인간의 신부> 등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이 반응하자 예스24도 ‘이(e)연재’ 서비스를 시작했고 전자책 서점인 북큐브, 리디북스 등도 연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전자출판협회는 지난해 전자책 시장 규모를 전년보다 12% 커진 3250억원 규모로 추산하면서 올해는 5838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전자책 시장은 특히 온라인으로 소비되는 장르 소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진영균 대리는 “짧은 시간 동안 스마트폰이나 단말기를 통해 독서하는 경향이 있는 전자책은 장르 소설처럼 가볍게 읽기 쉬운 콘텐츠가 인기”라며 “현재 종이 단행본 없이 전자책으로만 출간된 콘텐츠 58종 대부분이 장르 소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선시대, 귀족, 로맨스를 열쇳말로 한 장르 소설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계의 트렌드와도 일치한다. <북촌 꽃선비…> 역시 ‘조선시대 권력의 중심 북촌’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김정희 예스24 이(e)연재팀장은 “포털은 물론 온라인서점 등에서도 연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며 “앞으로 웹소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