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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늘 만나는 식물들의 경이로운 삶

등록 2014-01-05 20:06

한국 식물 생태 보감1
김종원 지음
자연과생태·7만5000원
‘식물 도감’이 아니라 식물의 ‘생태 보감’이다. 식물사회학자인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식물의 이름, 그 겉만을 알고 싶지는 않다”며 말쑥한 사진과 일제의 유산을 지금껏 베낀 설명으로만 가득 찬 ‘도감’은 공허하다 했다. 그래서 그는 1199쪽짜리 ‘보감’을 만들었다. ‘보감’은 ‘후세에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일을 적은 책’을 뜻한다. ‘귀중한 기록’의 대상은 식물들의 ‘삶’이다.

책이 첫번째로 소개한 ‘쇠뜨기’의 삶은 이렇다. 쇠뜨기는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질러 병해충과 잡초를 퇴치하는 인간의 농사 방식에 맞서서 자식을 퍼뜨리며 살아간다. “이른 봄 뜨거운 불을 생명 시작의 큐 사인으로 삼아서” 그을린 지면을 뚫고 싹을 내민다. 책에는 그을린 땅 위로 솟아오른 쇠뜨기의 생식경 사진이 담겨 있다.

쇠뜨기의 영양경(잎, 줄기 등 녹색 식물체) 속에는 규소 성분이 풍부하다. “논에 써레질을 마치고 논두렁에 자라는 쇠뜨기를 한 다발 뜯어서 쟁기에 달라붙은 진흙을 털어내며 문지르면 금속면이 반질거린다.” 지은이는 쇠뜨기가 쇠를 뜨는(연마하는) 데 이용돼 유래된 이름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미 17세기 초에 기록이 남아 있는 ‘속새’라는 이름이 연원이라 밝힌다. 소가 즐겨 먹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란 설명은 틀리다. 소는 삶아 줘도 잘 먹지 않는다 한다.

3쪽에 걸친 그리 길지 않은 ‘쇠뜨기의 삶’을 쓰기 위해 지은이는 국내 고전부터 외국의 논문까지 11권의 주석을 붙였다. 식물의 이름을 기록하고 어원을 찾으며 ‘국어와 한자의 얼 안에 온통 영어가 뒤범벅인’ 슬픈 현실을 후학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희랍어에 라틴어 사전까지 들췄다고 한다. 1권에 다룬 382종의 식물 중 할미꽃, 유채, 질경이, 익모초 등 65종의 이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대한 문헌 연구와 생태 관찰, 이 책을 정리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린 까닭이다.

책 정리의 가장 중심이 된 기준은 ‘사는 곳’이다. 어떤 생명도 아무 데나 살지 않는다. 식물들이 삶터를 가리는 정도는 가혹하리만큼 심하다고 한다. 인간이 불을 질러도 싹을 틔우는 쇠뜨기처럼 “좋아했기에” 참고 산다. 환경조건과 구성원들, 그들 사이에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분포 중심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식물사회학’은 거기에 주목한다.

이번 책은 1권이다. 1권의 주제는 ‘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이다. 우리 주변을 다시 ‘늘 쓰레기가 나뒹굴 만한 집 안팎 길가’, ‘논과 밭’, ‘들길 제방, 무덤 풀밭’, ‘마을 뒷산, 숲정이’, ‘습지: 흐르거나 고인 물터’, ‘틈새: 암벽, 담장, 지붕’으로 분류했다. 높은 학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마냥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류에서도 엿보이는 지은이의 삶을 중시하는 태도 덕분이다.

시리즈는 모두 10권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풀밭, 바닷가, 암벽·바위, 습한 땅 등 ‘삶의 터전’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는 식물들의 이야기가 계속 펼쳐질 예정이다. 출판사는 “1년에 한 권씩은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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