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천장에 설치하는 장식물인 ‘보개’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상의 동물로, 조선은 용을 통해 왕의 신성과 위엄을 강조했다. 민음사 제공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 참여
성리학 군주로서 세종 조명
꼼꼼한 인포그래픽 돋보여
성리학 군주로서 세종 조명
꼼꼼한 인포그래픽 돋보여
강문식·강응천·김범·문중양·박진호·송지원·염정섭·오상학·장지연 지음
민음사·2만3000원 민음사가 한국사 시리즈를 기획했다. 창사 50주년을 맞는 2016년까지 모두 16권을 낸다는 계획이다. 그 첫 결과물로 <15세기-조선의 때 이른 절정>과 <16세기-성리학 유토피아>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21세기의 시각에서 지난 수천년의 한국사를 세기별로 돌아보고 성찰하겠다”는 포부다. 신라, 고려, 조선 등 나라 이름을 벗어나 100년 단위로 뚝뚝 끊어냄으로써 ‘기존 역사 인식의 해체’를 꾀했다. 왜곡된 역사 교과서 때문에 불붙은 논쟁이 식을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시리즈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서술”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의기투합했다. <15세기>는 강응천 문사철 대표와 역사학자 강문식·김범·문중양·송지원·염정섭·장지연, 국문학자 박진호, 지리학자 오상학이 필자에 이름을 올렸다. <16세기> 집필에는 역사학자 권소현·송웅섭·정재훈·한명기, 건축학자 한필원 등이 참여했다. 여러 시기 중에 15세기와 16세기를 먼저 다루며 책은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근대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정말 그토록 희구하던 근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19세기 말 이래 끊임없이 근대를 갈구하며 피땀을 흘려온’ 우리 사회에 책은 ‘근대를 갈구한 이들이 그토록 저주하고 경멸하던 조선 500년’을 돌아보며 과연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다. 15세기의 한반도는 조선 전기, 제3대 태종부터 제10대 연산군까지를 의미한다. 14세기 후반 한국과 중국은 공통으로 ‘새로운 왕조의 등장’을 경험했다. 중국에서는 홍건적 출신 주원장이, 한국에서는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가 각각 명과 조선을 건국했다. 새 왕조를 창업한 군주가 권력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두 나라에서 모두 무력을 사용한 정권 교체가 발생했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중화 체제의 제후국을 지향했다. 100년 단위로 시간을 끊어, 당겼던 초점을 밀어내 넓게 보면 ‘바다의 시대’가 보인다. 중국의 해상 영웅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번의 항해에 나서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누비며 명 제국의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명은 이런 대항해를 중단시킨 뒤로 정부의 허락 없이는 해안선 밖으로 단 한척의 배도 띄우지 못하게 했다. 무역 대신 농업에 주력하면 된다는 것은 지주 계급인 사대부들의 이데올로기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이 성리학이다. 중국과 조선이 바다에서 물러나 농업에 주력하고 성리학을 탐구하는 동안 다른 민족들은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중국의 화약 무기, 나침반, 활판인쇄술을 바탕으로 현재의 이스탄불이 탄생했고 동서 교류를 통해 이슬람 세계와 유럽이 요동쳤다. 1450년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개발로 대량 인쇄의 시대가 열렸다.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다. 책은 “한글 때문에 종종 역사적 맥락에서 빠져나와 한국인의 추앙을 받는” 세종도 다시 역사 속에서 해석한다. 그는 “아버지가 확립한 사대주의를 철저히 실천하면서 조선을 확고한 중화 질서 속에 두려고 했던 성리학 군주”이며 “한글마저도 그러한 성리학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분석했다. 세종의 후손들이 왕으로서 보이는 결함과 비극을 조명하다 보면 세종 시기는 조선이란 국가에 있어 ‘때 이른 절정’이었다. 학창 시절의 영향으로 한국사와 세계사의 분리가 익숙한 세대에게 ‘세기적 접근’은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돌아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역사 교과서 논란에 이어 국정 교과서 논란이 불거진 지금, 이런 근본적인 의문은 우리 사회가 ‘한국사의 재구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책을 계기로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기 바란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책의 장점으로 정보를 담은 그림인 인포그래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15세기>에는 이 시기 험난한 표류를 이겨내고 조선 사대부 중 유일하게 중국 강남을 보고 온 최부(1454~1504)의 <표해록>을 상세히 풀어두었고 당시 활약한 국가, 인물, 처음 나온 물건 등을 정리했다. 16세기에는 임진왜란과 청자·백자에 대한 정보가 한눈에 보인다. 꼼꼼하고 친절한 인포그래픽을 보고 있노라면 시리즈 전체 기획자인 강응천 대표가 책 말미에 “두권을 마무리하는 데 마치 20권의 책을 만든 듯한 피로감이 몰려온다”고 밝힌 이유를 알 만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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