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낸 나희덕 시인. “어떤 상실의 경험은 시가 되는 것을 끈질기게 거부한다. 그러나 애도의 되새김질 역시 끈질긴 것이 어서 몇 편의 시가 눈앞에 부려져 있곤 했다”(‘자서’)고 썼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뿌리의 신도가 이젠 줄기를 믿고
사랑은 허공에서 길 잃고 흩날려
삶의 의미를 상실한 절망적 심사
사랑은 허공에서 길 잃고 흩날려
삶의 의미를 상실한 절망적 심사
나희덕 지음
문학과지성사·8000원 나희덕의 새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승한데, 그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는/ 확신에 찬 꿈을 꾸면서/ 어디 먼 곳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눈과 뺨과 팔과 다리를 쓸어내리니/ 싸늘한 돌멩이를 만지는 것처럼/ 냉기가 손끝을 파고들었다”(<피부의 깊이> 부분)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어떤 나무의 말> 부분) <피부의 깊이>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에 따른 상실감을 다룬 시들이 한편에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의 말>에서 보듯 화자 자신의 죽음과 소멸을 향한 의지를 드러낸 작품들이 다른 한편에 있다. “이 남아도는 나를 어찌해야 할까/ 더 이상 너의 시간 속에 살지 않게 된 나를// 마흔일곱, 오후 네 시,/ 주문하지 않았으나 오늘 내게로 배달된 이 시간을”(<잉여의 시간>)은 ‘너’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상실한 화자의 절망적인 심사를 한탄하듯 뱉어낸다. 화자를 사로잡은 무력감이 생의 무의미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고 더 나아가 스스로 소멸하고 싶다는 의지로 이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다 하겠다.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는 줄기를 믿는 편이다//(…)/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우리는 뿌리로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뿌리로부터> 부분) <어떤 나무의 말>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소멸에의 의지를 밝힌 이 시가 흥미로운 것은 시인의 등단작인 <뿌리에게>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로 시작하는 이 시로 나희덕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것이 1989년. 그로부터 사반세기의 세월이 흘렀고, <뿌리에게>에서 감탄사를 수반했던 ‘사랑’이 <뿌리로부터>에서는 “허공에서 길을 잃”고 “흩날”리고 있다. 사랑과 신생에서 죽음과 소멸로 나아가는 운동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시인이 알게 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한갓 부질없는 충동일 뿐이며 소멸의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라는 뜻일까.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부분) 이 시집의 표제작은 인어공주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물고기 여자”가 등장하는 <들리지 않는 노래>에서 “사랑을 잃고/ 그 때문에 목소리마저 잃은 당신”의 “물거품처럼 떠가는 노래”가 표제작의 ‘말들’에 대응함은 물론이다. 이 말들과 노래가 바로 시가 아닐지. 시집 뒤표지에 쓴 시인의 말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사라진 존재를 불러오려는 불가능한 호명”이 바로 시이니까 말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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