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은희경. 등단 20년째에 낸 열두권째 책이 “스침과 흩어짐”에 대한 생각에서 빚어져 나왔다고 밝혔다. 문학동네 제공
낯선 곳 당도해 고투하는 게 삶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뿌리 지탱
삶의 또다른 본질인 우연을 묘사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뿌리 지탱
삶의 또다른 본질인 우연을 묘사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1만2000원 은희경의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읽다 보면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번역 소설이 떠오른다.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장편이라고는 하지만 단편 열셋이 모인 연작으로, 은퇴한 여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에 놓고 그가 사는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그렸다. 은희경 소설집에도 표제작을 포함해 여섯 단편이 묶였는데 그중 한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중복출연’하거나 인척 관계로 얽혀 있다. 안나라는 여주인공의 열아홉살 겨울을 다룬 표제작에서부터 시작해 안나의 시이모인 마리 할머니의 시점을 택한 마지막 작품 <금성녀>까지를 읽고 나면 안나와 마리와 현과 완(규) 그리고 완(규) 부모로 이루어진 대가족의 몇십년 세월을 곁에서 지켜본 듯한 친근감이 든다. 어디 이들뿐이랴. 안나의 친구이자 연적이었던 루시아, 안나가 짝사랑했던 루시아의 남자친구 요한, 완을 짝사랑한 학교 친구 소영, 건강하고 행복했음에도 일흔여섯 나이에 이해할 수 없는 자살을 택한 마리의 언니 유리까지 조연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삶 역시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다가온다. 보편성과 개체성의 관계를 인상적으로 포착한 책 제목은 일본 시인 사이토 마리코가 한국어로 쓴 시 <눈보라>의 한 구절이다. 은희경의 소설들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인간 보편의 운명과 개체로서의 고독 또는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분투한다. 은희경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낯선 환경에 떨어져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표제작의 주인공 안나가 절감하는 서울의 추위, <프랑스어 초급과정>의 여주인공이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의 신혼집에서 받는 격절과 소외의 느낌, <스페인 도둑>의 조기유학생 완이 현지 학생들에게 느끼는 단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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