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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죽어서 끝났지만 다시 살아 시작하는 이야기

등록 2014-03-09 19:33

첫 장편 <내 이름은 술래>를 낸 김선재는 “주변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들, 가까이 있지만 숨어 있어서 없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첫 장편 <내 이름은 술래>를 낸 김선재는 “주변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들, 가까이 있지만 숨어 있어서 없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 이름은 술래
김선재 지음
한겨레출판·1만3000원

“먼 길을 걸어 아빠의 잠을 지키기 위해, 아빠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 나는 땅속 어딘가에서 겨울잠을 자듯 잠들어 있었고, 잠든 동안에도 내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악몽 속에서 집으로 난 길을 찾고 있었다. 아이처럼, 늙은이처럼, 다 산 것처럼,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것처럼 더듬거리며 끝없이 집으로 난 길을 찾았다.”

김선재의 첫 장편 <내 이름은 술래>는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여자아이 술래를 주인공 삼는다. 집에 온 술래는 지하철 행상을 하며 자신을 찾아다녔던 아버지와 반갑게 재회하고, 짜장면을 좋아하는 탈북 소년 영복이와 어울리며, 아주 어려서부터 제 곁에 없었던 엄마의 행방을 좇는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같은 동네에 사는 박필순 할아버지. 베트남전쟁에서 어린 오누이를 죽인 죄책감으로 삶을 버리다시피 해 온 그의 앞에 어느 날 또래 노인 광식이가 나타난다. 줄타기 명인이었던 그는 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워. 아름답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곤 하는 그에게서는 바보로 위장한 현자의 면모가 보인다.

<내 이름은 술래>는 술래와 박 할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일인칭 화자 ‘나’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술래의 이야기와 박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이어지다가 중반부 이후에야 서로 만나며, 술래와 영복이, 박 할아버지와 광식이가 술래 엄마의 정체를 찾는 일에 함께 나서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땅속 잠든 채 집을 찾아온 소녀
글쓰기로 구원받는 할아버지
삶으로 인도하는 이야기의 힘

“검은 구멍 속으로 누워 있는 아이를 봤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 반쯤 눈을 뜬, 혹은 반쯤 눈을 감은 아이의 얼굴은 온통 진흙투성이다. 유일하게 아이의 벌어진 입만 진흙이 닿지 않아 말짱한 상태인데, 그 틈에서 연분홍빛 지렁이가 기어 나온다.”

집으로 돌아온 술래가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떠올린 ‘기억’이다. 이 기억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이 죽어서 흙에 묻혀 있는 술래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분명해진다.

그렇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술래는 이미 죽은 사람인 것. 흥미로운 것은 소설 속에서 아빠와 영복이 같은 주변 인물들은 술래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술래 자신은 제 처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이 중반부에 이르도록 “나는 (…) 죽었을 리 없다”며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려 했던 술래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야 “나는, 죽었다”며 사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죽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끝난 이야기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가 되어.”

술래는 죽었으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아이,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인물이다. 죽음으로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려는 말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야”라는 술래 아빠의 말이 그런 짐작을 뒷받침한다.

한편 글쓰기 교실에 등록한 박 할아버지는 타자기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글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제 삶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

“검은 자판에 선명하게 박힌 자음과 모음들이, 어쩌면 나를 구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머릿속을 떠도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면,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답답함을 기록할 수 있다면, 어쩌면 무리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술래가 이야기의 힘으로 죽음에서 삶 쪽으로 넘어왔다면, 박 할아버지는 글쓰기를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살림의 문학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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