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프로덕션, 출판사에 제안서
조인성·공효진 출연 드라마에
“줄거리도 바꿀 수 있다”며 협찬 제안
출판계 “책도 광고 경쟁 내몰려 착잡”
조인성·공효진 출연 드라마에
“줄거리도 바꿀 수 있다”며 협찬 제안
출판계 “책도 광고 경쟁 내몰려 착잡”
최근 몇몇 출판사에 제안서 하나가 전달됐다.
올여름 지상파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의 제작사가 간접광고(PPL) 등을 제안하며 수억원대의 제작지원금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드라마에 나온 책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되며 이른바 ‘드라마셀러’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지만, 5억원에 이르는 액수가 명시된 사전 제안서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ㅈ프로덕션의 ‘수목 미니시리즈 제작지원 제안서’엔 “5억원을 주면 전회 간접광고를 해주고 주·조연의 직업으로 설정해주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제안서는 제작지원금으로 ‘출판사 5억(VAT 별도)’을 명시한 뒤 ‘(해당 책이나 출판사 관련) 에피소드 5회, 간접광고 전회, 주·조연 직업으로 설정, 전반적인 메인 배경 사용, 제작지원 표기, 보도자료·홈페이지를 통한 홍보’ 등을 약속했다.
ㅈ프로덕션은 간접광고를 망설이는 출판사에 “출간할 책의 표지를 먼저 주면 그 표지를 드라마에 노출한 후 종영 뒤 출간을 하게 되면 홍보가 조금 더 극대화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이미 정해진 큰 틀의 주제는 있으나 출판 예정인 책의 스토리대로 변경은 가능”하다며 책 홍보를 위해 드라마 내용까지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오는 8월부터 <에스비에스>에서 방송될 수목 미니시리즈 <괜찮아, 사랑이야>다. 인기 작가인 노희경씨가 극본을 쓰고 주인공에 톱스타 조인성·공효진씨가 확정됐다. ‘스타 시스템’이 공고한 방송판에서 이런 조건이라면 시청률 기대치가 커져 ‘홍보 단가’가 올라간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홍보 내용을 ‘사전 조율’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제작사 쪽은 출판사에 드라마의 줄거리와 각종 배역을 미리 알려주고 사전에 에피소드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드라마 간접광고는 1억원을 들여도 책이 드라마 내용과 맞지 않거나 시청률이 낮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곤 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제작사들이 먼저 줄거리를 알려주고 출판사에 책을 추천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만들다 보니 홍보효과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ㅈ프로덕션 관계자는 “간접광고의 경우 에스비에스는 회당 3000만원 수준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번 드라마는 전회 간접광고를 포함하는데다 작가 겸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의 ‘직업’까지 활용이 가능해 제작지원금을 5억원으로 책정했다”며 “현재 여러 출판사가 관심을 보여 가격을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2년 새 이런 방식이 업계 관행으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억원이라는 액수도 충격적이지만 이는 앞으로 ‘드라마 마케팅’ 비용이 높아질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책이 냉장고나 자동차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광고 금액 경쟁에 내몰리는 모습을 보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드라마 노출 경쟁’이 출판시장을 흐릴 수 있는데도 출판사들이 제작사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드라마셀러’의 위력 때문이다. 3월 둘쨋주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비룡소 펴냄)이 3주 연속 1위다. 2009년 출간돼 5년 동안 1만부가 팔렸던 이 책은 드라마에 노출된 뒤 석 달 만에 17만부가 팔려나갔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신간을 내면 ‘우리 책은 어떻게 드라마에 못 내보내냐’며 한숨짓는 편집자들이 많다”며 “간접광고 비용이 치솟으면 이런 방식의 홍보를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출판사만 살아남는 양극화 현상이 가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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