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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마음

등록 2014-03-16 19:27

편집자 김민정
편집자 김민정
영원한 귓속말
최승호 외 지음
문학동네·8000원

2011년 1월 최승호·허수경·송재학의 시집을 무녀리 삼아 출범한 ‘문학동네시인선’이 50권을 맞아 기념호 <영원한 속삭임>을 내놓았다. 지난 시집 49권에서 시인 스스로 뽑은 시 한편씩과 새로 쓴 산문 하나씩을 묶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흐느낌, 입술을 비집고 겨우 나오는 말,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온몸에 끈끈한 막을 두르고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는 말. 이런 것이 시에 가깝다. (…)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완성은 없다.”

시 쓰는 일의 힘겨움,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모종의 사명감을 토로한 박연준 시인의 산문에서 책 제목을 가져왔다.

각각 300권과 400권을 훌쩍 넘긴 창비와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시리즈는 물론 200권을 넘어선 민음사의 시집들에 비해서도 고작(!) 50권에 이른 문학동네시인선이 기념호를 내는 것이 조금 생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을 사서 읽는 이가 갈수록 줄어들어 초판을 고작 1500부에서 2000부만 찍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각별한 애정으로 이 시집 시리즈를 만들어 오고 있는, 그 자신 시인이기도 한 편집자 김민정(사진)은 그럴수록 이런 식의 기획으로라도 시와 시집에 대한 관심을 새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시와 시집은 이 바쁜 시대의 우리에게 반성과 돌아봄, 특히나 뒤를 쳐다보게끔 여유를 줍니다. 짧은 한 문장 한 문단 안에서, 삶에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지침을 주기도 하지요. 남과 다른 삶에서 오는 불안함이 아니라 자유로움, 그걸 만끽하게 함으로써 삶의 새로운 재미를 찾게 해주는 동력도 시에는 있어요.”

3년 남짓 낸 이 시리즈에 참여한 시인 49명 중에는 벌써 명을 달리한 이도 있다. 시선 37권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의 김충규 시인이 그로, 2012년 3월18일 새벽에 47년 생애를 성급하게 마감했다. 그가 숨을 놓기 20여일 전에 쓴 메모는 시와 죽음 사이에 놓인 시인의 마지막 시간들을 증언한다.

“절대의 고독은 빙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절대고독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더 확장되고 숨결은 평화로워진다. 시가 되려는 입자들이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고요히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는다.”

김충규 시인의 메모 곁에 19권의 주인공 김경후 시인의 시를 놓아두고 싶다.

“다음 생애/ 있어도/ 없어도/ 지금 다 지워져도// 나는/ 너의 문자/ 너의 모국어로 태어날 것이다”(김경후 <문자> 전문)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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