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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골로 도망칠 생각 마라

등록 2014-03-23 20:19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1만3000원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목차만 봐도 숨이 찬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너른 들판의 고요한 풍경이 담긴 표지가 무색하게 제목부터 “시골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71)가 2008년에 쓴 이 책은 ‘도시에서 살다 은퇴 뒤 시골에서 살아볼까 하는 남성’을 겨냥한 책이다. 도쿄에 살다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23살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던 그는 이후 시골로 이주해 47년째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시골 쉽게 생각 말라”며 호통을 친다.

‘시골 생활을 꿈꾸는 남자의 뇌구조’는 이렇다. “일만 하는 중압적인 날들, 속 터지는 인간관계, 무미건조한 부부 사이, 술과 니코틴에 흉해진 육체”가 역겹다. 은퇴 뒤 “인간다운 삶을 찾자”는 초조함이 몰려오고 “시골의 슬로 라이프가 뇌리에 번뜩”인다. 책은 이것이 ‘홀로 서기 정신의 부족’ 때문이며 부모, 학력, 직장, 가정에 의존하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자 시골로 도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도시에서 현실이 혹독했다면 시골은 그 이상이라 말한다. ‘전망이 좋은 고지대에다 햇볕이 잘 드는 경사진 남향’이라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을 믿었다간 산사태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산에서 솟아난 물이 필지 안으로 흘러들어 기뻐했다가는 토사류에 휩쓸릴 수 있다.

직접 키운 채소를 맛보는 삶? 나이 육십에 처음으로 농사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농사일이 수지타산은 맞지 않는데 너무도 고된 일이기에 이미 많은 이들이 농촌을 떠났다. 조용한 시골에서 책이나 읽는다? 지은이는 “시골은 작은 재해들도 직접 처리해야 한다”며 비웃는다. 눈이 내리면 제설을, 태풍이 올 땐 대비를 해야 한다.

‘끈끈한 관계’는 어떤가. 변화와 자극에 굶주려 있는 시골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온’ 당신은 좋은 먹잇감이다. 너무 많이 수확해 처치 곤란한 채소나 과일을 들고 오면 당신은 크게 감격할 것이다. 하지만 곧 아무 때나 서슴없이 방으로 들어오는 왕래에 피로를 느낄 것이라 예언한다.

책은 ‘시골의 범죄’에 대비해 큰 개를 기르고 수제 창을 준비하라고 심각하게 조언한다. 다만 이 대목에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시골에 흘러든 외국인들이 범죄율 상승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편견을 드러낸 것은 책의 허점이다.

결국 “시골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시골을 생각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는 은퇴한 남성들에게 “이제라도 홀로 서기를 한 성인 남성이 되어보라”며 ‘나 자신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각자 해답을 찾자고 제안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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