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성 한림대 교수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7층 인터뷰실에서 최근 펴낸 책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제국’ 저자 이삼성 교수 인터뷰
6세기 일본에 도움 청하면서 써
상대국 위계 승인하는 외교 용어
서양선 고대 로마에서 처음 탄생
세계질서 ‘제국 담론’ 경계해야
6세기 일본에 도움 청하면서 써
상대국 위계 승인하는 외교 용어
서양선 고대 로마에서 처음 탄생
세계질서 ‘제국 담론’ 경계해야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가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한길사)에 이어 5년 만에 <제국>(소화)을 펴냈다. 현대 미국의 외교를 비롯한 국제정치학에 몰두해온 그가 1990년대 말부터 동아시아 질서에 관심을 가지더니, 이윽고 ‘제국’에 대한 개념사 연구에 만 6년 동안 매달려 책 한권을 들고 돌아온 것이다.
이 교수는 여기서 서양과 동양,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제국’ 개념의 기원과 전개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2000년을 이어온 ‘제국’이란 말 뜻의 변화와 국제질서에 따른 담론의 요동을 파헤친 것이다. 이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 유통되는 담론의 위험 징후를 포착하면서부터였다.
“2000년 초, 좌우파를 막론하고 ‘제국’이란 개념이 너무도 많이 통용됐습니다. 모두들 제국과 세계질서·문명을 동일시하고 ‘차선으로 가능한 세계질서’를 표상하는 현실적인 개념으로서 ‘제국’을 동원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문제의식을 느낀 거죠.”
‘제국’은 동서고금을 가로질러온 말이다. 고대 로마는 ‘제국’(라틴어 임페리움)을 자신이 세계의 정치·문명적 중심임을 선언하는 개념으로 썼다. 근대 일본은 서양의 ‘엠파이어’를 한자어 ‘제국’으로 번역해 동아시아에서 이 말의 개념적 뿌리가 자신들이라는 학계의 통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 교수는 ‘제국’이란 한자어가 6세기 중엽 백제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백제가 일본을 ‘제국’이라고 일컫는 구절이 나온다. 나제동맹이 깨지고, 고구려의 압박 속에서 일본에 도움을 청하던 백제가 ‘상대국의 정치적 위계를 승인하는 질서 표상의 개념’으로서 외교 용어를 채택한 것이다.
“2006년 막 연구를 시작했을 때 국사편찬위원회가 구축한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검색하다 발견한 겁니다. 저도 ‘제국’이란 개념의 한자어 기원이 중국에 있을 줄로만 알았지, 고대 한국에서 창안되었을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았죠.”
그 뒤에도 이 교수는 9세기 말 최치원이 쓴 통일신라 외교문서에서 중국을 ‘제국’이라 쓴 용례를 발견했고, 조선의 문인들이 시문에서 중국을 가리켜 ‘제국’이라 일컬었던 것도 잇따라 찾아냈다. 요약하면, 제국이란 개념은 고대 로마와 고대 한국에서 각각 독립적 기원을 가진 채 이어져온 시공간의 중층성을 띠고, 고대 한국과 근대 일본에서도 ‘황제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로 연속성을 지니며 사용돼온 것이다.
핵심적인 ‘의미소’로서 ‘제’(황제)의 뜻과 정치적 기능은 이 교수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다. 서양의 ‘임페라토르’(엠퍼러)는 종교적·정신적 권위를 한데 아우르는 존재가 아니었다. 종교에서 서양의 초월자는 인간의 권위와 접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동아시아의 제는 종교적·정신적 권위를 함께 지녔다. 새뮤얼 헌팅턴은 이를 두고 서양의 ‘민주주의 문명’과 동양의 ‘전제적 문명’이라고 차별화하면서 진정한 민주정치는 서양에서만 가능한 질서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의 이론이 ‘제국’의 폭력성을 입맛대로 사면한 1990년대 미국의 신보수주의와 깊은 친화성이 있다고 본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제’의 초월성을 절대화하지 않았어요. 세속적 정치권력과 절대자의 초월성 사이에서도 일정하게 타협하는 정신적 사유체계가 있죠. 게다가 ‘제’라는 문명이 융성한 때는 동서양 모두 비슷한 권위주의적 시대였습니다. 훗날 역사·사회적 조건이 차별성을 지니며 어느 한쪽에서 민주주의가 먼저 발전한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정신문명 자체의 우열성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주변부 국가의 지식인들이 ‘제국’ 중심부 지식인들의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 것, 미국 신보수주의가 복권시킨 ‘제국’의 개념을 긴장감이나 비판 없이 수용하는 담론의 위계적 사유를 경계한다. 좌우파를 막론한 이런 지적 흐름을 보고 그는 “제국 담론이 전복됐구나, 물구나무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개탄했다. 미국이 완성한 ‘제국’ 개념의 복권에는 정교한 이론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지배와 폭력의 대명사로서 강대국이 서로를 겨냥해 ‘미 제국’, ‘적색 제국’이라고 호명하던 때가 있었지만, 1960년대 말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이 이를 탈이념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대받은 제국’으로서 ‘미국 제국’에 대한 의미 전복을 완성한 것이죠. 이것이 탈냉전시대에 들어서 완전히 복권된 제국 개념입니다.”
이 교수의 문제의식을 또 한번 자극한 건 유명 좌파 학자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의 제국론이었다. 그들은 지금의 세계질서를 결국 극복돼야 할 현실이라고 봤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정점에 있는 어떤 체제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까지 개념의 유행에 합세하는 지식사적 현상을 그는 우려했다.
“아주 위험합니다. 세계 역사를 제국의 흥망성쇠로 기술하는 것이 정확한 개념화인지 의문스러워요. 제국 담론은 국제질서 담론으로서도 실질적이지 못해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죠. 제국 담론이 풍미할수록 현실정치 공동체로서의 ‘주권국가’라는 진지한 담론은 폐기 처분되고, 정치적 삶의 민주화에 대한 핵심적 장으로서 ‘국가’라는 문제는 주변화됩니다. (개인의 삶은) ‘국가’를 결코 초월할 수 없고 앞으로도 초월하지 못할 거예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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