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이리 카페에서 열린 소설 <내 이름은 술래> 낭독회에서 작가 김선재가 발언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소설가 백가흠이고 맨 왼쪽은 소설가 황현진, 왼쪽 둘째는 시인 서효인이다.
김선재 ‘내 이름은 술래’ 낭독회
40여 청중앞 한시간 묻고 답하고
“아빠와 못했던 일 생각하며
소설 속 술래와 아빠 그렸죠”
40여 청중앞 한시간 묻고 답하고
“아빠와 못했던 일 생각하며
소설 속 술래와 아빠 그렸죠”
“요즘은 인기 작가들이 커다란 강당에서 수백명씩 독자를 모아 놓고 하는 행사도 많아졌지만, 이렇게 오붓한 자리가 분위기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작가와 직접 눈 마주치면서 문학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한층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지난 3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이리 카페. 40명 가까운 청중이 자리를 채운 가운데 김선재 소설 <내 이름은 술래> 낭독회가 열렸다. 손님으로 나온 서효인 시인의 말처럼 규모는 작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감하고 밀도가 높은 행사였다. 주인공인 시인 겸 소설가 김선재를 비롯해 서효인 시인과 소설가 백가흠이 손님으로 나왔고, 절친인 소설가 황현진이 사회를 맡았다.
“소설 시작 부분에 두 주인공 중 한명인 필순 노인이 70년 된 벚나무를 도끼로 찍어 쓰러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가 태어나던 날 조부가 선산에 심은 나무였죠. 마침 지금은 만개했던 벚꽃이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무렵이네요.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쓰러진 벚나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마음으로 한시간 남짓한 낭독회를 함께했으면 합니다.”
황현진의 센스 있는 발언으로 낭독회는 시작되었다. 여느 낭독회와 달리 청중들이 돌아가면서 제 소개와 낭독회에 참가한 계기를 이야기하는 순서가 이색적이었다. 나중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취업준비생, 김선재의 시를 좋아해서 왔다는 청년, 저녁밥 하기 싫어서 왔다는 여성 등 사연이 다채로웠다.
“저는 어려서도 부모님에게 애교를 부려서 예쁨을 받는 딸이 아니었어요. 어른이 되어서야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가 아빠에게 못 부렸던 애교, 그래서 아빠에게 못 받았던 사랑, 아빠와 내가 못 했던 일들을 대신 해 본다는 생각으로 소설 속 술래와 아빠를 그렸어요.”
김선재는 소설 주인공 술래의 실제 모델이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런 다음 소설 한 대목을 낭독했다. 필순 노인이 며칠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친구 광식이를 찾아 집 바깥으로 나가 보는 장면이다. 그 가운데 “아무도 없다는 건, 그런 것이다. 불러줄 사람도 없고 부를 사람도 없다는 것”이라는 문장을 두고 사회자가 질문했다. “책 제목도 그렇고, 이름과 이름 부르기가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은데요?”
“한자어 이름 명(名)이 저녁 석(夕) 자와 입 구(口) 자의 결합인 것은, 어두워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부르기 위해 생긴 게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자 나와 가장 가까운 것이 이름인데, 그 이름을 정작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어 준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주인공 술래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설정은 이 소설의 핵심적 장치 중 하나다. 그와 관련해 사회자는 ‘귀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을 작가와 두 손님에게 공통적으로 던졌다. 백가흠은 “크리스천이라서 신을 믿는데, 그건 곧 귀신 역시 믿는다는 뜻”이라고 답했고, 서효인은 “4월의 제주 오름이나 5월의 광주 충장로에 가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어떤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김선재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더라도 그것은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의 연장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는 죽은 자보다는 살아남은 자들이 죽음을 견뎌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효인이 소설 첫머리를 낭독하자 백가흠은 책 맨 뒤에 놓인 ‘작가의 말’을 읽었다. “아마도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게 바로 ‘작가의 말’일 텐데, 낭독회에서 이 부분을 읽는 일은 드물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떻게 제목을 지었는지, 소설을 왜 쓰는지 등에 관한 객석의 질문에 작가와 손님들이 답을 한 다음 사회자가 마무리 발언을 했다.
“소설 말미에서 죽은 술래가 자신의 죽음을 뒤늦게 수락하고 아빠와 세상으로부터 떠나가기로 결심하면서 이런 다짐을 합니다. ‘사랑해, 라고 말하면 사랑해, 라고 대답하는 이 세상의 대화법을 잊지 않을 거다.’ 바로 이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대화법이 아닐까 싶어요. 두번째 읽을 때 한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설, <내 이름은 술래> 낭독회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글·사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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