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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대 배신 안한 작가, 독자도 배신 안했다”

등록 2014-04-09 19:28수정 2014-04-09 21:12

(왼쪽부터) 황석영·신경숙 작가.
(왼쪽부터) 황석영·신경숙 작가.
‘런던도서전’ 황석영·신경숙 작가
“서구 작가들은 내게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나서 좋겠다고 한다. 남북한은 60년째 전쟁중이고, 나는 군사정권에 맞서다 감옥에만 세번 갔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트라우마도 많고 고통도 심했다는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너의 자유가 부럽다’고 답했다. 나는 그동안 작가로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살아야 했다.”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개막한 런던도서전 첫날 ‘문학과 역사’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작가 황석영(왼쪽)씨의 얘기에 다양한 나라에서 온 30여명의 청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참여해 대규모 전시관을 꾸린 한국과 그 나라의 작가를 알기 위해 참석한 출판인들이었다.

황석영 ‘이야깃거리 많은 나라’ 역설
“한국 ‘쓰레기 위 들꽃’처럼
전쟁 불안 속에도 힘있게 살아가”

그들에게 한국은 ‘전쟁을 겪고, 분단된 상태에서, 지독한 가난을 기적처럼 벗어난 나라’였다. 독재정권의 핍박 속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나라였다. 영어권 출판 시장을 대표하는 런던도서전에서 ‘한국의 정체성’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작가들이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내놓는 단어는 낯선 만큼 분명하게 시대적 상처를 드러냈다.

황씨는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전쟁이 나 대구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다들 천막 치고 힘들게 지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시장에서 <걸리버 여행기>를 사다 주셨다. 전쟁통에도 책을 만들어 팔고, 또 그걸 사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포 위에서 잠을 자는 것”처럼 전쟁의 불안 속에 살아가지만 “쓰레기 위에 피어난 들꽃”처럼 힘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나이 57살에 감옥을 나왔을 때 한달치 생활비 정도밖에 없었는데 이런 나를 지금껏 먹여 살린 것도 작가가 시대를 배신하지 않는 한 그를 배신하지 않는 한국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란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는 현실을 바꾸려고 직접적으로 행동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변했다”며 “이제는 옛날과 달리 문학이 사회·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오래 고민해온 그는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문학을 보며 문학의 역할이 점점 좁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신경숙 ‘어디선가…’ 영문판 공개
“한국은 굉장히 역동적
‘세대 단절’ 이야기 하려 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미국·영국 등 36개 나라 독자를 만난 신경숙(오른쪽)씨도 8일 런던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그는 “전쟁을 겪은 세대부터 전쟁을 모르는 세대까지, 한국 사회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변하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대가 모여 살고 있다”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절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시위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했던 암울하고 비극적인 1980년대” 분위기를 담은 그의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영어 제목 I’ll Be Right There)의 영문판도 이날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는 “80년대는 나의 20대가 담긴 시절”이라며 “이런 문제는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느 시대 젊은이나 공감할 수 있도록 소설에서는 80년대라는 배경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황씨의 세미나에 참석한 영국 작가 카밀라 샴지는 “서구에도 역사·사회적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닌데 작가들이 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서구 작가들이 과연 깊은 성찰을 통한 소설 쓰기를 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런던/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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