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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추상적 주제에 집착 말고 ‘소설의 몸’을 읽으세요

등록 2014-04-13 19:42수정 2014-04-14 08:53

평론가 황도경
평론가 황도경
<문체, 소설의 몸>
<문체, 소설의 몸>
문체, 소설의 몸
황도경 지음
소명출판·2만2000원

“박완서의 중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 대해 ‘자식 잃은 모성의 슬픔’ 식으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은데 유독 그 소설이 훌륭한 까닭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죠. 큰동서와 전화로 얘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소설에서 자식 잃은 주인공 ‘나’의 말은 우울하다기보다는 경쾌하고 수다스럽습니다. 그 독백 같은 수다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슬픔과 고통을 풀어내고 넘어설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죠. ‘말의 힘’을 소설 내용으로뿐만 아니라 서술 형식을 통해서도 보여준다는 게 이 소설의 뛰어난 점입니다.”

문체론 비평에 주력하고 있는 평론가 황도경(사진)이 문체론 비평의 이론과 실제를 망라한 새 책 <문체, 소설의 몸>을 내놓았다. 1990년 등단 이후 문체론적 비평을 천착해 온 그는 2002년에도 <문체로 읽는 소설>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그 책이 문체론을 적용한 실제 비평을 모은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좀 더 정리된 문체론 개념을 스스로도 확립할 필요에서 이론과 실제 비평을 아울렀다”고 했다. 지독한 몸살감기로 운신이 힘들다는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영어 ‘스타일’(style)의 번역어라 할 ‘문체’는 한자어로 밝혀 놓을 때 한결 적확하게 다가온다. 문체(文體)란 ‘글의 몸’인 것. 이번 책 제목은 그런 생각을 담고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에 던컨 왕을 살해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맥베스를 가리켜 ‘맥베스는 잠을 살해했다’고 표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말은 ‘맥베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잠을 살해했다’는 표현이 지닌 함축적인 힘을 전달하기에 역부족이죠. <로미오와 줄리엣>도 원수 가문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작품 시작 부분부터 신혼/무덤, 사랑/미움, 너무 이른/너무 늦은 식으로 사랑과 죽음이 짝패를 이루며 등장한다는 사실, 결국 우리 삶에 사랑과 죽음이 한 몸처럼 붙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문체론 비평의 이론과 실제
문체는 수사적 장치를 넘어
‘말의 힘’ 보여주는 서술 형식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읽을 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향해 성급하게 내달리지 말고 찬찬히 소설의 몸을 통과해야 한다고 그는 권유한다. 그 자신 작품의 문체적 특징을 잡아내기 위해 한 작품을 열번 이상 읽는다고 한다.

<문체, 소설의 몸>에서 그는 문체론의 통시적 흐름과 공시적 좌표를 두루 짚고 실제 비평을 곁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가령 이상의 소품 <휴업과 사정>은 주인공 보산과 이웃 사람 사이의 사소한 갈등을 다루는데, 보산의 행위와 심리를 묘사하는 문장들에서 주어로 나서는 것은 칫솔·물·종소리·방·밤 같은 사물이나 무생물이고 보산은 피동적인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런 문법적 처리가 “보산의 무력감과 피동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 문체론적 비평의 설명 방식이다. 이상의 대표작 <날개>에서 주인공의 행위와 사고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무는 반면 그가 구사하는 낱말들은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이라는 이율배반이 “자아 분열 또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문체의 차원에서 보여준다는 판단도 마찬가지. “존재의 시원을 향해 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서술로 그려내는 듯 보이지만, 곳곳에 기사문이나 보고문, 기록문 등이 그대로 인용, 삽입되거나 대상에 대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설명문이 함께 자리”하는 윤대녕 소설의 문체적 특징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순간 비의적이고 신화적인 내면의 공간으로 길을 열어 놓는” 소설 주제와 긴밀하게 조응한다.

황도경은 “문체란 아름다운 문장이나 수사적 장치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문학은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며 문체는 아름다운 수사가 아니다”라며 “문체에 관심을 갖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독서 대상으로서 ‘소설의 몸’을 읽는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도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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