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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계적 문호들의 보석같은 산문

등록 2014-04-13 20:01수정 2014-04-14 08:51

고전 작가들의 논픽션 산문을 펴내는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시리즈가 출범했다. 사진은 보들레르의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 실린 콩스탕탱 기스의 삽화 <두 말괄량이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은행나무 제공
고전 작가들의 논픽션 산문을 펴내는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시리즈가 출범했다. 사진은 보들레르의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 실린 콩스탕탱 기스의 삽화 <두 말괄량이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은행나무 제공
‘위대한 생각’ 시리즈 1차분 5권 발간
보들레르의 준엄한 당대 예술 비판
‘저널리스트’ 디킨스의 면모 등 담겨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읽을 때 친구가 와서 같이 하자는 놀이, 페이지에서 눈길을 돌리게 하거나 자리를 바꾸게 만드는 귀찮은 꿀벌이나 한 줄기 햇빛, 우리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손도 대지 않은 채 옆에 있는 벤치 위에 밀어둔 간식, (…)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유년기의 독서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기억을 되살려낸 이 문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산문 <독서에 관하여>의 앞부분이다.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에 촉발되어 유년기로 기억 여행을 떠나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같은 글에서, 시골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을 묘사한 부분도 냄새와 기억 사이의 유기적 관련을 담고 있어서 주목된다.

“시원한 바깥 공기가 호텔 방에 갇혀 있던 공기 냄새를 씻어버리려 하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후각은 그 내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다시 맡아보려 백번도 더 애쓰며 이를 모델 삼아 그 공기가 간직하고 있는 생각들과 추억들을 방 안에 재생시키려 하는 것이다.”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은행나무·1만3000원 ●전진하는 진실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엮고 옮김/1만5000원 ●자연  랠프 월도 에머슨 지음, 서동석 옮김/1만2000원 ●밤 산책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1만1000원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샤를 보들레르 지음, 정혜용 옮김/1만1000원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은행나무·1만3000원 ●전진하는 진실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엮고 옮김/1만5000원 ●자연 랠프 월도 에머슨 지음, 서동석 옮김/1만2000원 ●밤 산책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1만1000원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샤를 보들레르 지음, 정혜용 옮김/1만1000원

<독서에 관하여>는 프루스트가 1906년 영국의 문호 존 러스킨의 연설문집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고서 쓴 역자 서문이다. 프루스트는 미술비평가 러스킨에게 매료되어 그의 책 두권을 번역했다. <참깨와 백합>과, 그에 앞서 1904년에 번역한 일종의 여행 안내서 <아미앵의 성서>가 그것이다. 프루스트는 이 책들에 제법 긴 분량의 역자 서문을 붙였는데, 그 안에는 1909~1922년에 쓴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씨앗이 곳곳에 박혀 있다.

새롭게 번역 출간된 책 <독서에 관하여>에는 앞선 두 역자 서문과 미술 관련 산문 여섯편이 함께 수록되었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기획한 고전 산문선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의 제1권으로 나왔으며, <전진하는 진실>(에밀 졸라) <자연>(랠프 월도 에머슨) <밤 산책>(찰스 디킨스)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샤를 보들레르)가 1차분으로 함께 출간되었다. 소설이나 시로 잘 알려진 작가들의 논픽션 산문을 소개한다는 이 기획은 조지 오웰, 오스카 와일드, 스콧 피츠제럴드, 앙드레 말로, 올더스 헉슬리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보들레르의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현대적 삶의 화가’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신문 삽화가 콩스탕탱 기스에 관한 글에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망에 즈음해 쓴 추도문을 더한 책이다. 지난 시대 예술의 기준과 형식을 좇느라 자기 시대의 유행과 풍속을 붙잡지 못하는 당대 예술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이 텍스트는 특히 ‘현대성’에 관한 보들레르의 정의를 담고 있어서 모더니즘 논의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에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유행이 담아내게 되는 시적인 그 무엇을 유행으로부터 끌어내는 것, 덧없는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 문제이다. (…) 현대성, 그것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서 예술의 절반을 차지하며 나머지 절반이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에밀 졸라의 <전진하는 진실>은 저 유명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비롯해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졸라가 쓴 글들과 드레퓌스 사건 연보 및 해설, 졸라의 인터뷰 등을 한데 묶은 책이다.

“저들이 감히 사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나 또한 감히 말하려 합니다. 사건이 정식으로 제소된 상태에서 정의가 명명백백하게 행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진실을 소리 높여 말할 것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확신으로 거듭 외칩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 부디 나를 중죄재판소로 소환하여 공명정대하게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밤 산책>에 실린 산문 여덟은 국내 초역으로, 디킨스가 스스로 발행하던 잡지 <일상적인 말들>과 <일 년 내내>에 실렸던 것들이다. 작가로서 자리잡기 전에 기자로서 현실을 관찰하고 기록했던 ‘저널리스트 디킨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준 초절주의자 에머슨의 <자연>은 표제작을 비롯해 긴 산문 다섯을 묶은 책이다. 이 가운데 <자연>의 앞부분은 ‘자연주의자’ 에머슨의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혼자 살고자 한다면, 인간은 사회에서 물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방에서도 물러날 필요가 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해도 읽고 쓰는 동안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홀로 있기를 원한다면 그에게 별을 보게 하라.”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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