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헌(68) 한국 비무장지대(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정성헌 DMZ평화동산 이사장
내금강을 역사·문화·생태관광지로
‘금강산과 연계’ 방북 제안 예정
민주화기념회 이사장직 임기 마쳐
안행부 연임재청 받지 않아…“유구무언”
내금강을 역사·문화·생태관광지로
‘금강산과 연계’ 방북 제안 예정
민주화기념회 이사장직 임기 마쳐
안행부 연임재청 받지 않아…“유구무언”
“근사하게 이야기하면, 끊임없이 떠나서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운동가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진짜 근사한 것이지요. 그야말로 표표히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 아닐까요?”
1964년 고려대에 입학한 그해 굴욕적인 한일협정 반대 시위(‘6·3사태’)에 가담했다가 당시 19살 나이에 내란죄 항목의 ‘주요임무 종사자’로 찍혀 3개월간 구금당한 이후 50년간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밀살리기 등의 ‘운동’ 현장을 지켜 온 정성헌(68) 한국 비무장지대(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지난해 말 3년간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그가 지난 24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원래 지금쯤 한창 두릅 따서 맛있게 먹을 때인데, 벌써 끝나버렸어요. 꽃이 너무 일찍 피고 져버렸어. 큰일이요. 이러면 벌 등 벌레와 새들도 제대로 적응을 못해 꽃가루받이(수분)도 제대로 안 되고 열매도 신통찮아. 4년 전 구제역이 심할 때 민간 양봉가들은 토종벌 97%가 죽었다고 했고, 정부는 76%라고 했어요. 내가 보기에 한 80%는 죽은 것 같아.”
정 이사장은 자연생태계 파괴가 “이미 임계치를 넘은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걱정하며 생명평화 운동 쪽으로 시선을 돌린 이유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는 가톨릭농민회나 우리밀살리기운동에서 주로 본부에서 활동했지만, 그때도 활동 시간과 공간의 반은 현장이었다고 했다. “그 뒤 나는 현장으로 갔고, 지금 디엠제트 현장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농담조로 얘기합니다. 내금강 현장까지 가면 내 운동은 끝이다라고요.”
1998년에 시작한 디엠제트동산은 그 다음해 인제군 서화면에 3만7000평의 땅을 마련해, 해마다 목화수금토의 5행에 맞춰 1500~2000그루의 나무를 심어왔고, 교육마을을 만들어 연간 7000여명의 학생, 시민, 국내외 운동가, 공무원들에게 생명·평화·통일 이념을 전파했다.
“지금까지 96개국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했다. 그가 최근에 낸 책 <현장에서>(리북 펴냄)도 ‘평화·생명·통일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지금 현장 운동가들이 참고할 만한 경험 많은 선배의 육성이 너무 필요하다”는 후배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경험을 이야기로 쉽게 풀었다는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운동인데, 사람의 변화를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무너뜨릴 생각이 너무 강했던 것입니다. …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함께 이루어야 합니다. … 스스로 함께 꾸준히 하는 것이 운동입니다.”
민이 앞장서서 모금을 하고 인제군이 많은 경비를 부담했으며, 환경부도 함께하는 민관 공동의 디엠제트동산 운영은 “민관 50 대 50으로 의사결정을 하되 실무집행은 민 쪽이 맡기로 처음부터 약속”했단다. 정 이사장은 “지금 15명 이사진 구성은 13 대 2로 민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했다. “2000년 북에 갔을 때 공동사업을 제의했다. 디엠제트동산에서 내금강까지 40분이면 갈 수 있다. 길도 이미 다 돼 있다. 그러니 내금강을 역사·문화·생태 중심 관광지로 만드는 사업을 한번 벌여보자고.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쪽에 치중하지 않았나. 그때 북이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1박을 디엠제트동산에서 하고 2박째는 내금강에서 하는 2박3일 일정이면 딱 좋지 않은가. 올해 하반기에 방북신청을 해서 그 사업 시작하자고 할 작정이다.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장안사도 복원하고 싶다. 발의를 기독교가 하고 불교가 이를 받아 실행하는 민족과 종교의 화해 모양새가 되면 좋겠다.”
기념사업회 이사장 임면권을 지닌 안전행정부 장관이 정 이사장 연임 제청을 받지 않고 박상중 목사를 이사장에 앉히려는 문제로 사업회 직원들이 장기농성을 벌이는 등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왜 굳이 그랬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글쎄, 낸들 알 수가 있나요. 이럴 때 딱 맞는 얘기가 바로 유구무언”이라고만 했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그는 “비열하고 책임감 없고 무능한” 사건 관련 당사자들과 관료주의적인 정부, 분별없는 언론을 나무라면서도 “나도 이 사회의 작은 선장”이라며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글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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