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
신작 ‘소소한 풍경’ 낸 박범신 작가
‘소금’ 이후 은퇴 충동 시달려
‘플롯 없는 소설’ 실험 시도
2녀1남의 사랑·죽음 다뤄
‘소금’ 이후 은퇴 충동 시달려
‘플롯 없는 소설’ 실험 시도
2녀1남의 사랑·죽음 다뤄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하는 사랑을 그렸지만 쾌락을 좇는 소설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사랑의 불완전성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박범신(사진)이 전작 <소금> 이후 1년여 만에 새 소설 <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을 내놓았다. 7일 낮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젊었을 땐 ‘유일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는 식의 문장을 쓰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런 사랑은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억압적인 것 같다”며 “현실에서 일대일의 사랑은 사회·정치적 제도로서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말로 소설 속 ‘다자 관계’를 옹호했다.
<소소한 풍경>은 ㄱ, ㄴ, ㄷ으로 일컬어지는 2녀1남이 질투나 거부감 없이 이어가는 ‘특별한 사랑’과 그 사랑의 한 당사자인 남자의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은 여자 ㄱ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과 ㄱ의 대학 시절 교수였던 작가가 화자가 되어 끌어가는 부분으로 나뉘는 일종의 액자형 구조. ㄱ이 혼자 사는 집에 먼저 집주인에게 내쫓긴 남자 ㄴ이 들어오고, 이어서 갈 곳 없는 탈북 여성 ㄷ이 들어오면서 셋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다.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데다 결혼에도 실패하고 혼자 사는 ㄱ이나 광주 5·18 당시 형과 아버지를 계엄군의 총탄에 잃은 ㄴ, 또는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짐승 같은 중국 남자에게 빌붙어 살아야 하는 지난한 탈북 과정을 거친 ㄷ 모두 ‘죽음’에 짓눌리고 들려 있기는 마찬가지. 소설 속 핵심 사건인 ㄴ의 죽음에 ㄴ 자신은 물론 ㄱ과 ㄷ 역시 공모 내지는 동조를 했다는 암시는 그들의 사랑이 기본적으로 죽음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슬픔이 이 소설을 이루는 하나의 축이라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밑바닥에는 어떤 살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랑의 완성이란 죽음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말은 소설 속에서 ㄷ이 한 말 “언니랑 아저씨랑, 우리, 지금 함께, 한순간에 죽는 게 가장 행복한 거, 맞잖아!”를 떠오르게 한다. ㄷ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함께 죽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겠노라며 밀폐된 방 안에 연탄불을 피웠다가 발각된다. 그런 행복한 죽음은 서로 사랑하는 세 사람이 벌거벗고 욕조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장면을 말하는, “셋이서 포개져 물속에 앉아 있으면 시간은 정지된다”는 문장으로도 연결된다.
소설 속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 근본적인 지향은 자유일 텐데, 삶에서나 사랑에서나, 사람들은 플롯을 만들어 씌워 구조화하려고 평생 안달하거든.” 작가 박범신이 이번 작품을 ‘플롯 없는 소설’로 써보려 한 의도를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소금>을 끝낸 뒤 작가로서 할 말을 다 한 것처럼 좌초한 느낌이 왔습니다. 은퇴를 선언하고자 하는 충동에 시달렸고 실제로 은퇴 선언서까지 쓰다가 그만두기도 했어요. 작가로서 저는 이전 소설보다 나아지거나 어떤 식으로든 달라져야 소설 쓰기의 필연성을 만족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서는 나름 진지한 문학적 실험을 시도해 보았던 것인데,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네요.”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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