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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떠나라는 말 듣고도 울지 않았다”

등록 2014-05-27 18:22수정 2014-05-27 21:10

재미 의사 시인 마종기
재미 의사 시인 마종기
재미 의사 시인 ‘마종기’ 낭독회

1966년 박정희 정권에 쫓겨
고국 떠나야 했던 개인사 담아
시 ‘별…’ 대독 듣고는 눈물 훔쳐
“내 나라 하고 크게 부르면/ 내 아들아 하고 대답하는,/ 정겨운 목소리가 메아리 되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어라.//(…)// 그런 나라가 더 이상은 없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고 혼자 살리라./ 멀리서 내 나라를 그리워만 하리라.”(마종기 <내 나라> 부분)

재미 의사 시인 마종기(사진)의 잔잔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시인 정현종,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화영 오생근, 불문학자 최권행 서울대 교수, 화가 정미조 수원대 교수를 비롯해 한국인과 프랑스인이 섞인 청중 50여명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 카페 ‘카사 갈라’에서 열린 마종기 불역 시집 <하늘의 맨살>(김현자 옮김, 브루노 두세 출판사 펴냄) 낭독회는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펼쳐졌다.

재한문화 예술인 모임 ‘인사이드 코리아’(대표 사진작가 크리스토프 니바지올리)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마 시인의 시를 시인 자신과 니콜라 아자르 하비에르 국제학교 교사가 각각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낭송하고, 뮤지션 로익 장드리(덕성여대 강의초빙교수)가 시의 분위기에 맞추어 만든 기타 음악 연주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섬> <그레고리안 성가> <동생을 위한 조시> 등 낭송된 작품 상당수가 박정희 정권 때인 1966년 추방되다시피 고국을 떠나야 했던 시인의 개인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해 여름에는 여의도에 홍수가 졌다./ 시범아파트도 없고 국회도 없었을 때/ 나는 지하 3호실에서 문초를 받았다”로 시작하는 <섬>도 그렇고, 앞서 인용한 <내 나라> 중 “나는 약속대로 오래 죽어서 살았다./ 떠나라는 말 듣고도 울지 않았다.”는 대목도 그 일을 가리킨다. 시인은 특히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을 낭독할 차례에서는 번역자 김현자씨에게 대신 읽어 줄 것을 부탁했다. 직접 읽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신 읽은 번역자 역시 울먹이면서 가까스로 낭독을 마쳤고 고개 숙인 채 듣고 있던 시인 역시 슬그머니 눈물을 훔쳤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부분)

낭송과 음악 연주가 모두 끝난 뒤에는 청중들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날 행사장을 제공한 카페 갈라의 한귀리 대표는 “<섬>을 듣다 보니 최근 많은 이들로 하여금 국가에 실망하게 만든 세월호 사건이 떠오른다. 혹시 그와 관련해서 시를 쓸 생각이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 시인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산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참견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제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정미조 교수의 질문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 있을 때 틈틈이 쓰기에 시가 적절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글·사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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