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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월호’로 본 무능국가‘ 나그네 환대’의 연대로
마을서 해결력 키우자 우선 아이들 놀려야죠

등록 2014-06-03 18:57

왼쪽부터 김현경 교수와 인류학자 조한혜정
왼쪽부터 김현경 교수와 인류학자 조한혜정
인류학자 조한혜정·김현경 교수 ‘성미산 마을 대담’
불과 몇분 사이였다. 행사 시간이 다 되도록 극장에 사람이 너무 없다 싶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십명의 주민들로 객석은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연 ‘2014 성미산 마을의 5월-세월을 이야기하다’ 행사였다.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1990년대 공동육아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공동체를 이뤄 산다.

이날 행사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마을’에서 연 문화인류학자들의 대담으로, 조한혜정(오른쪽 사진)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현경(왼쪽) 이화여대 교양교육원 외래교수를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했다.

조한 교수는 “세월호 사태를 통해 사람들이 공공성을 상실한 ‘재난 사회’,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짬짜미하는 ‘부패사회’, 윗사람의 눈만 의식하는 ‘아부사회’를 여실히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현경 교수는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일상적이며 사회적인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가 1929명이고, 그 중 516명이 건설현장에서 사망했다”며 “지난해만 해도 세월호 참사가 몇번이나 있었던 것이지만 삶에 절박한 가장, 부모로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같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전우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냐”고 되물었다.

일상적인 죽음에 견줘 사람들이 이번 참사를 엄청난 재난으로 받아들이게 된 건 아이들이 대거 희생당한 데서 원인을 찾았다. “영화 <괴물>을 보면, 소시민적인 인생을 정당화해주는 것이 아이들이었는데, 국가가 아이들을 못 지켜주는 것을 본 소시민들이 절망한 뒤 스스로 괴물과의 전쟁이 나서게 된다”며 “이번 사건에서도 아이들이 구조받지 못하고 희생당하는 것을 지켜본 부모들이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전쟁과 재난은 닮은 꼴이다. 세월호 선장에게 비난이 쏟아진 것을 보면, 마치 ‘군기 빠진 군인’ 대하듯 한 것을 알 수 있다”며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인구를 유지하려는 전쟁 논리와 맞닿아있다. ‘셀 수 있는 인구’로 환원하는 것이 전쟁·재난의 논리”라고 말했다.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 청중의 질문에 조한 교수는 “고고한 개인이나 개별적인 핵가족을 넘어 비빌 언덕이 있는 ‘마을’ 또는 ‘부족’에서 일상적 삶에 드러나는 위험들과 가능성들을 세심하게 파악하는 경제·사회시스템을 새로 만들어낼 때가 됐다”고 답했다. 그는 “기후변화, 핵무기, 테러, 원자력 발전소 폭발 등 온갖 재난사고가 예상되는 시대를 꿰뚫어보게 된 이들을 자율적 개인이 진화한 ‘환대의 주민’이라고 부르고 싶다”며 “이들은 스스로를 돕기로 한 시민이자 서로를 돕고 새로운 거버넌스 국가를 만들어가는 주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내가 국가의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있는 한 공공성도, 연대의식도 생기지 않는다”며 “재난을 극복하려면 나그네에게도 쉴 자리와 음식을 나눠주는 ‘환대’에 기반한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조한 교수는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시스템, 마을이나 학교도 되는 그런 곳에서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어부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가 “우선은 아이들이 쉬어야 한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그래, 우린 쉬어야 해!”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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